시와 감상

꽃 지는 날 [송재학]

JOOFEM 2019. 6. 2. 17:27







꽃 지는 날 [송재학]






   우리는 어디에서 헤어지는가 혼백의 이목구비가 이럴

까 꽃나무 아래 유령의 손짓에 이끌리는 꽃잎들, 낙화하

면서 꽃이었던 기억은 죄다 빗물에 씻겨버렸는가 붉은색

마저 헐벗었구나 향긋한 꽃잎이 아니라면 익숙한 서체인

거지 어디에서 왔느냐 묻지 않고 어디 가느냐 묻지 않는

다 꽃잎을 도려낸 얇은 입김에 얹혀 혓바닥에 앉은 종기

처럼 납작 엎드린 슬픔, 검은 바위에 부적처럼 붙어 있다

가 문득 혼과 백의 입말로 나뉘어 또 어딘가 흩날리겠지

너라는 영혼은 안간힘이기 전에 우선 꽃잎 또는 아껴놓

은 꽃잎이 남았기에 우리는 어디에서 다시 만난다는 거

지 꽃잎이면서 자꾸 무엇을 가리키는 열 개의 손가락은

반드시 챙기면서 


                   - 슬프다 풀 끗혜 이슬, 문학과지성사, 2019







* 오월 초에 맹맹한 이팝나무가 하얗게 문을 열면

중순에 아카시아나무가 향기를 뿜으며 벌들을 모은다.

이내 질 때쯤이면 쥐똥나무가 하얗게 마무리 한다.

향기로 치자면 쥐똥나무가 으뜸이다.

가지 몇개 꺾어서 탁자에 올려두면 일주일은 하얀 향기에 취할 수 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가는 이 꽃들은

자연의 섭리를 알고 가는 것이니

꽃잎 모습은 기억나지 않아도 그 향기만은 뇌리에 남아

훗날 깨달음의 오월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