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구석 [신미균]
JOOFEM
2019. 9. 11. 10:14
구석 [신미균]
책상다리와 벽 사이
빛도 선뜻 들어오지 않는
그곳에
거미가 거미줄에 붙어
말라 죽어있다
거미줄에는 다른 곤충이
걸렸던 흔적은 없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한 칸 한 칸 이어 나갔을
먼지 묻은 거미의 진액에
변두리 후미진 어두컴컴한 곳에
집을 장만하고는
안 먹어도 배부르다 하시던
아버지가 달려있다
거미줄을 소중하게 떼어 내
넓고 환한
세상으로 날려 보냈다
- 웹진 '시인광장' 2019년 9월호
* 새 집에 이사를 가도 어느 틈에 거미줄이 생긴다.
벌레도 그다지 많지 않을 텐데 거미줄을 치고 기다리다니 신통하기도 하다.
그러다 어느날 거미줄만 남기고 사라지는 거미.
거미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까.
아들이 어렸을 때 곤충을 많이 키웠는데 그중 타란튤라라는 놈을 키웠었다.
손바닥에 놓으면 꽉 찰 정도로 큰놈이었는데
한때 그놈이 플라스틱통을 탈출해 사라졌다. 삼개월을 못찾아 자면서도 타란튤라가 기어나와 물까봐(혹은 먹힐까봐) 무서워했던 그 시절. 삼개월이 지나 서울에서 천안으로 이사할 때에야 장롱 뒤에 숨어있는 걸 발견하고 찾았다. 통통했던 놈이 홀쭉했던 타란튤라. 인간도 타란튤라처럼 안 먹어도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죽을 때까지 거미처럼 거미줄 치고 먹이를 구하고 먹어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