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무주에서 하루 [천양희]

JOOFEM 2019. 10. 18. 23:27








무주에서 하루 [천양희]






골짜기 따라가니

물의 귀엣말이 옛이야기만 같다

들국(菊)을 곁눈질하다

산은 자주 바위를 떨어뜨린다

못 본 척 나는

주목나무 숲 그늘로 들어간다

때때로 그늘이

풀꽃들을 가리는지

춥다, 춥다 웅크린다

지난 슬픔은 한잎씩 피어나

내 근심 속에서 저녁이 빨리 온다

나는 벌써

버린 사랑으로 발목이 삐어

멀리 갈 수가 없다

해탈교에 가려면

이속대(離俗臺)를 하나 더 넘어야 한다

구천계곡 위로 바라보는 

절벽이 왜 이리 가파른가

날아가다, 새들이

날개를 접기도 한다

어둠이 어슬렁 걸어온다

짐스런 나를 내려놓고

일박(一泊).


                - 마음의 수수밭, 창비, 2019




* 무주 구천동은 천연적이고 자연적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마곡사를 다녀왔다.

모처럼 휴가를 낸 Y선생이 마곡사에 가서 닭백숙을 먹으며 밤을 보내자 했는데

대전의 어느 산을 오른 후 너무 늦게 이동하다 보니 

둘이서 닭백숙을 먹긴 부담되어

민박집에서 짐을 풀고 

올갱이국에 막걸리 한병 나누었다.

그리고 밤하늘의 별이 아름다워 별과 구름을 보며 선선한 바람과 함께 산책을 했다.

캄캄한 밤에 이속대를 갈 수 없고 해탈교도 갈 수 없었다.

잠들기 전에 맥주 한 잔하며 해탈교를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나누었다.

여덟시 전에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하여

이튿날 아침 일곱시쯤 일어나 아무도 없는 마곡사를 산책하였다.

일박으로 짐 내려두고 마곡사의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만사천보를 걸었더니 속세를 떠난 듯하고 마음의 무거운 짐이 훨씬 가벼워졌다.

남자와의 일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