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백조의 호수 [강영은]

JOOFEM 2020. 2. 5. 11:01

 

 

 

 

 

백조의 호수 [강영은]

 

 

 

 

 

  뜨거운 후라이팬 바닥을 휘젓는다

  참깨 발가락들이 꼼지락거린다

  뒤꿈치를 드는 참깨, 무릎 구부리는 참깨, 한 다리

를 직각으로 펴는 참깨,

  깨금발 군무를 시작한 참깨들이

 〈백조의 호수〉무용수 같다

 

  여기저기 작은 무용수들이 튄다

  한 발이 올라가면 한 발 세상이 튄다 깨금발 세상이

튄다

  발가락이 누렇게 타들어간다 뒤꿈치가 발갛게 벗겨

진다

 

  발레리나 강수진은 깨금발 세상을 들어 올리느라

  일주일에 천 켤레의 눈물을 버렸다지?

 

  천 켤레의 리듬, 천 켤레의 눈물이 허공을 휘젓는다

  휘휘 돌아가는 깨금발 세상이 어지러워 나도 모르

게 한 발을 든다

  왼발 오른발,번갈아 들며 리듬을 탄다

 

  허공을 높이 찰수록 허공을 향한 몰입은 고소해지

는 걸까

  두 발로 허공을 걷어차 본다

  허공을 걷어차는 고난도의 연기는 깨소금 맛

  가브리엘의 경지다

 

  손잡아줄 발레리노 없는 나는 슬픈 체공을 한다

  깨금 호수의 프리마돈나

  타닥 탁, 허공을 차는 동안 두 발을 놓친

  나는 어디로?

 

                            - 최초의 그늘, 시안, 2011 

 

 

 

 

 

 

 

 

* 두 발로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든 세상인데

군무를 하는 무용수들이 발가락과 뒤꿈치를 희생해가며

얼마나 힘든 체공의 시간을 보냈을까.

한 우물을 파고 산다는 건 축복이기도 하지만

고난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야 이룸을 얻는 경지이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그래서다.

 

어제 홍시인을 만났는데 큰딸이 취업해서 경력을 쌓고 있다는 소식이

깨소금 맛이었다.

한국인의 밥상을 맡아 음식의 세계에 일조를 한다는 것.

그것도 삼년 하면 풍월을 읊고 십년 하면 고수가 되고

오십년 하면 신선이 될 터.

꼭 이름을 날리는 큰딸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