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호수 [강영은]
백조의 호수 [강영은]
뜨거운 후라이팬 바닥을 휘젓는다
참깨 발가락들이 꼼지락거린다
뒤꿈치를 드는 참깨, 무릎 구부리는 참깨, 한 다리
를 직각으로 펴는 참깨,
깨금발 군무를 시작한 참깨들이
〈백조의 호수〉무용수 같다
여기저기 작은 무용수들이 튄다
한 발이 올라가면 한 발 세상이 튄다 깨금발 세상이
튄다
발가락이 누렇게 타들어간다 뒤꿈치가 발갛게 벗겨
진다
발레리나 강수진은 깨금발 세상을 들어 올리느라
일주일에 천 켤레의 눈물을 버렸다지?
천 켤레의 리듬, 천 켤레의 눈물이 허공을 휘젓는다
휘휘 돌아가는 깨금발 세상이 어지러워 나도 모르
게 한 발을 든다
왼발 오른발,번갈아 들며 리듬을 탄다
허공을 높이 찰수록 허공을 향한 몰입은 고소해지
는 걸까
두 발로 허공을 걷어차 본다
허공을 걷어차는 고난도의 연기는 깨소금 맛
가브리엘의 경지다
손잡아줄 발레리노 없는 나는 슬픈 체공을 한다
깨금 호수의 프리마돈나
타닥 탁, 허공을 차는 동안 두 발을 놓친
나는 어디로?
- 최초의 그늘, 시안, 2011
* 두 발로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든 세상인데
군무를 하는 무용수들이 발가락과 뒤꿈치를 희생해가며
얼마나 힘든 체공의 시간을 보냈을까.
한 우물을 파고 산다는 건 축복이기도 하지만
고난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야 이룸을 얻는 경지이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그래서다.
어제 홍시인을 만났는데 큰딸이 취업해서 경력을 쌓고 있다는 소식이
깨소금 맛이었다.
한국인의 밥상을 맡아 음식의 세계에 일조를 한다는 것.
그것도 삼년 하면 풍월을 읊고 십년 하면 고수가 되고
오십년 하면 신선이 될 터.
꼭 이름을 날리는 큰딸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