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자 [이홍섭]
나무의자 [이홍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라이언 긱스는 툭 하면 차를
바꾼다. 몸이 차의 안락에 적응하면 자기 폼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잉글랜드의 귀화 요구를 거부하고 어머니의
조국 웨일스를 고수해 단 한 번도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다.
대신 그는 툭 하면 차를 바꾸며 여전히 현역으로 그라운드
를 누빈다.
가난한 나는 차 대신 툭 하면 의자를 바꾼다. 기어코 딱
딱한 나무의자로 되돌아와 척추를 곧추 세웠다 허물기를 반
복한다. 나에게 귀화해달라고 애걸하는 나라는 없지만, 그런
날이 오더라도 이 남루한 조국을 버리지는 않을 작정이다. 대
신 툭 하면 의자나 바꾸며 살아가려 한다. 의자가 나를 안기
전에 내가 의자를 버릴 것이다.
- 검은 돌을 삼키다, 달아실, 2017
*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바꿀 수 없는 게 있다.
학적이다.
이 말은 어느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교장선생이 한 말이다.
바꿀 수 있는 게 있고 바꿀 수 없는 게 있다.
가령 고흐가 그린 의자의 실제 의자라면 버리겠는가.
헤르만 헤세가 수채화를 그릴 때 즐겨 앉았던 의자라고 하면
영광인줄 알아, 이것들아! 하면서 애장품으로 간직하며 앉지도 않을 것이다.
가끔 시집을 중고서점에서 살 때가 있다.
시인이 겉장 속, 속표지에 '매사 넉넉하소서!'라고 덕담과 친필 사인을 해줬건만
중고서점에 버려진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뭐, 라면 끓인 냄비 받침대로도 쓰임받지 못한 시집이니 그나마 다른 주인(?) 찾은 것이라면
이적의 노래제목처럼 '다행이다'싶다.
살면서 버리면 버려지는 것들이 참 많다.
다 껴안고 살 수는 없는 것이지만 버리면 언젠가 나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며 살아야 할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