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오리털 파카신 [문보영]

JOOFEM 2020. 9. 28. 22:24

내 털 내놔!

오리털 파카신 [문보영]

 

 

 

 

신이 거대한 오리털 파카를 입고 있다 인간은 오리털 파

카에 갇힌 무수한 오리털들, 이라고 시인은 쓴다 이따금 오

리털이 삐져나오면 신은 삐져나온 오리털을 무신경하게 뽑

아버린다 사람들은 그것을 죽음이라고 말한다 오리털 하

나가 뽑혔다 그 사람이 죽었다 오리털 하나가 뽑혔다 그

사람이 세상을 떴다 오리털 하나가 뽑혔다 그 사람의 숨통

이 끊겼다 오리털 하나가 뽑혔다 그 사람이 사라졌다

죽음 이후에는 천국도 지옥도 없으며 천사와 악마도 없

고 단지 한 가닥의 오리털이 허공에서 미묘하게 흔들리다

바닥에 내려앉는다, 고 시인은 썼다

 

            - 책기둥, 민음사, 2019

 

 

 

 

 

 

* 날씨가 선선해져서 긴옷을 입어야 할 때다.

조금더 지나면 오리털 파카를 입은 사람들이 저마다 입고 나와

오리털들을 뽑아내며 뽐낼지도 모른다.

아마도 지금 오리털 파카 신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오리털을 뽑고

가공하느라 공장마다 분주할 테다.

오리는 지옥이고 공장일꾼들과 앞으로 오리털 파카를 입을 사람들은

천국이라 말하겠다.

죽음 이후에는 오리가 천국 갈지 오리털 파카 입은 사람들이 지옥 갈지

아무도 모른다.

 

천국에도 천사와 악마가 80 대 20으로 존재해서 천사를 괴롭히는 천사(악마)가

있을 수도 있다.

- 야, 니 날개가 더 예쁜데 이리 내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