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임경섭]
반짝반짝 [임경섭]
무츠키가 다섯 살 되던 해의 일이었다
애벌레가 꿈틀거리는 가을이었고
달이 환한 밤이었다
무츠키는 부모와 함께
비탈진 솔숲 사잇길을 걷고 있었다
한손으로는 어머니의 검지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중지와 약지 사이에
잠든 잠자리의 날개를 끼워 든 채
무츠키는 울창하게 웃자란 낙엽송 가지 사이로
부서진 달빛을 바라보면서
부모를 따라 걷고 있었다
내리막이 시작되자 달빛 대신 여러 채의
다락이 있는 집들이 뿜는 희미한 불빛이
별자리처럼 흔들렸다 무츠키가 달빛을 놓치고
마을 쪽으로 고개를 돌릴 즈음이었을까
무츠키의 머리 위로 털 한 뭉치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무츠키의 부모는 허리를 굽혀
자식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털이 아니었다
무츠키의 부모는 머리털이 곤두섰다
그것은 꿈틀거리고 있었다
무츠키의 어머니는 혼신의 힘으로 팔을 휘둘러
자식의 머리통을 휘갈겼고
무츠키의 아버지는 사력을 다해 두 발로
바닥에 떨어진 송충이를 여러 차례 짓이겼다
무츠키에게는 날벼락과도 같은 일이었다
무츠키의 부모는 흉측한 벌레로부터
자식을 구해낸 것에 안도했지만
무츠키는 달랐다
그는 부모가 징그럽다고 하는 것이 왜
징그러워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자신을 때리고 밀치면서까지 고요를 짓밟아버린
부모를 언제까지 미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세 식구가 지나간 자리 위로
울퉁불퉁한 비탈길이 환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 우리는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창비, 218
* 부모 세대는 일제시대의 압제와 육이오 때 난리를 겪었고
그래서 그 경험으로부터 어떤 특정한 사건이 터지면 난리가 난 듯 법석을 떤다.
법석은 야단법석 난리법석을 말하는데 석가모니가 들에서 설법을 전할 때 중생들이 무질서하게 떠드는 풍경을 말한다.
무츠키의 머리에 송충이가 떨어졌다고 무츠키의 부모는 난리법석을 떤 거다.
무츠키는 왜 송충이를 짓이겨 죽이려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세대의 차이는 그 세대가 겪는 경험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험에서 오는 세계관이 달라 다른 반응을 보이는 까닭이다.
각 세대에게는 옳고 그름이 다르기 때문에 같기를 바라면 안될 것이다.
그동안 2030세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다가 요즘 갑자기 눈길 눈총을 과하게 주고 있다.
눈으로 줄 게 아니라 실제로 길을 열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법석이 아니라 관심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