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암실 [장정욱]
연꽃 암실 [장정욱]
꽃이 피어난 곳을 입구라 했다
멀찌감치 시간을 거슬러 있는 한 사람
당신은 왜 그곳에 들어가지 않나요
꽃잎이 닫히기 전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하나 둘 셋 셔터가 열리면
웃음 같기도 한
울음 같기도 한 눈동자가 흔들려요
물 위에 현상된 얼굴은
아직 진흙을 다 털어내지 못했어요
당신의 떨어진 꽃잎인가요
나를 지워낸 아이인가요
물그림자와 함께 담아둔 감정이
흙탕물처럼 탁해져
물결은 구름 한 점 읽어내지 못해요
셔터의 눈길이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푸른 잎맥을 따라 여자들이
또 그 뒤의 여자들이
찰칵찰칵 다른 표정으로 태어나요
마지막 꽃이 질 때 그곳을 출구라 했다
모두 빠져나간 사진관, 바랜 아이들이
다시 양수 안으로 들어가 깊어졌다
- 여름 달력엔 종종 눈이 내렸다, 달아실, 2019
* 세상에 나왔다가 들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일까?.
양수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머니의 좁은 문으로 들어왔지 나간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커다란 녀석을 그 좁은 문으로 나오게 하느라 압출진통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아이가 느낀 압출진통이 더 크다.
배를 째고 태어난 아이가 좁은 문으로 나온 아이보다 대체로 머리가 좋다는 건
통증을 그만큼 덜 느꼈다는 거다.
어쨌거나 세상에 들어왔다가 평생을 잘 지내다 나간다.
나가는 곳이 곧 출구이다.
꽃이 질 때 출구로 나가 다시 양수의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다행히 출구로 나갈 때에는 압출진통이 없이 널널하게 마치 기화하듯이 나간다.
좁은 문으로 들어오고 넓은 문으로 나가니 홀가분하기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