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식물 [조온윤]
반려식물 [조온윤]
아침이 되면
나와 가장 가까운 육체부터 찾는다
누워 있던 자리에서 더듬더듬 손을 뻗어보면 축축한 목덜미가 만져진다
간밤의 꿈을 이불 위에 쏟아버린 나의 가여운 반쪽
떨지 마 네겐 빛이 조금 모자를 뿐이야
몸을 일으켜 세워 기지개를 시킨다
찬물을 한모금 먹이고 잘 마른 새 옷을 입힌다
창을 열어 오늘의 날씨를 가르쳐준다 이 모든 게 지겹도록 반복되지만
세상의 모든 반쪽은
나머지 절반마저 제 것인 줄 안다
식탁에 앉아 턱을 괴고 실내를 바라보고 있으면
가끔 그것과 눈이 마주칠 때가 있다
멀뚱멀뚱
나를 방금 처음 만난 사람처럼 굴 때면 화가 나다가도
하얀 눈발 같은 눈동자가 무구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네 속을 열어보고 싶어
그 안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고 싶어
쌀알처럼 무수한 빛으로 가득 채워주고 싶어
네가 고개를 들 때마다 들리겠지 물결에 부딪는 자갈 소리처럼
나의 반쪽은
나의 반쪽을 미워할 줄 모르니까
나는 나를 모르는 내가 시들게 두지 않을 것이다
밤이 되면 밤에게는 그림자를 돌려주고
육체에게는 그림자를 돌려주고
육체에게는 오늘도
내가 사라지지 않고 늘 함께 있음을 이야기해줄 것이다
- 햇볕 쬐기, 창비시선, 2022
* 반려동물은 대개 십여 년을 넘기면 노인 축에 든다.
그러다 죽으면 상실감 때문에 또다시 키우고 싶지 않게 된다.
반면에 반려식물은 꾸준히 새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그러면서 조금씩 자라니까
키우기가 훨씬 안정감을 준다.
꽃기린이 스무 살, 야자수나무가 열여섯 살, 커피나무가 열네 살, 그 외에 장미, 비파, 로즈마리 등등
배신감 내지는 상실감을 주지 않고 잘 자라주는 식물들이 늘 함께 살고 있다.
커피나무는 콩이 열리는대로 작은 화분에 키워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
백만 스물 둘, 백만 스물 셋......에너자이저처럼 오래오래 함께 살아주면 좋을 반려식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