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짖지 않게 해주세요 - 나는 불안해서 살아있다 [김광명]

JOOFEM 2022. 12. 21. 12:37

짖지 않게 해주세요 - 나는 불안해서 살아있다 [김광명]

 

 

 

 

  너를 부를 땐 러시아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면 좋겠어 안나

까레리나처럼 눈 내리는 역에 서 있는, 그 또는 그녀의 가계도에 쓰일

이름, 하나의 몸통으로 여러 개의 꼬리를 기른 알렉세이, 알렉세이 표

도르비치, 알료사, 료사, 알료시카처럼

 

  너는 항상 노매드, 너의 동공에서 낙타가 날아올랐어 네가 나를 위

해 게르를 세운 적이 없으니 나도 너를 위해 솔체꽃을 준비할 필요가

없지 밤마다 난로를 피우는 사막에 나를 방목하면 좋겠구나

 

  너의 이야기를 따라온 바퀴벌레가 하이힐을 물고 가는 걸 봤어 나는

첼로 소리로 올라탔지 놀란 건 아니야 넌 그저 여권이 없는 타국인 다

중 국적자 혹은 에일리언 어느 나라 말로 날아다녀도 발목 잘린 오른 

다리를 끌며 몸을 흔들기 일쑤인

 

  상상 속의 너는 임상실습 교육을 받는 걸까 이따금 온몸이 굳어버리

는 나를 돌보지 나는 너무 얌전해 다루기 힘든 환자, 똥 냄새를 풍기

는 모르모트, 성기를 어쩌지 못해 떨고 있는 X 염색체 군락지, 너는 

메스에 피를 숨긴 채 실밥을 매듭짓지

 

  너는 눈 흰자위, 흑백 사진들, 손님 없는 카페, 주문과 동시에 녹는 

대낮의 골목, 무성 자막의 도시······쪼그려 앉은 자세로 외우는 괜찮

은 것들의 가면

 

  너랑 같이 진공 목소리를 나눠 마실까 코르크를 한 움큼 토해버릴까

꿈틀거리는 코르티솔,

  카페 앞에 버려진 헬륨풍선만한 파트라슈

 

                 - 시와사상 2022 하반기 신인상 공모 당선작중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