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연하장에 눈이 내리고 있다 [김경란]

JOOFEM 2022. 12. 31. 18:08

 

 

 

 

 

연하장에 눈이 내리고 있다 [김경란]

 

 

 

 

일 년 내내 녹지 않을 눈이 내린다

눈송이들의 사연으로 부풀어 오르는 연하장

소인 자국에 더욱 선명히 살아나는

눈···

눈······ 눈·········

 

요철의 천공들이 눈송이처럼 떨어지고 있다

우표 속 수선화 왕머루가 눈 위에 박힌다

검은 스탬프의 그물망에 담겨 전해질

체취와 흔적들,

그리운 주소를 달고 끈끈히 붙여지고 있다

 

한 해의 기억들 소인에 찍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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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장의 흰 봉투마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우체국 도장에 흔적을 새기고 있다

 

                 - 눈 내리는 연하장, 시안, 2010 

 

 

 

 

 

 

 

 

*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연하장을 만들었다.

검정색 도화지를 사서 교회를 그리거나 시골의 정겨운 집 한 채를 그리고

나머지는 흰 물감으로 점을 찍었다.

눈 내리는 풍경의 연하장을 대량으로 만들어 팔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침 묻힌 우표를 딱 붙여 우편으로 보내기도 했던 연하장.

요즘에는 연하장을 보내는 걸 본 적이 없다.

제로사이다를 흉내 내었을까, 제로낭만의 시대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카톡 같은 걸 통해 문자로 현란한 사진과 문구를 보내긴 한다.

그냥 옛날의 갬성(?)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을 말하는 거다.

우체국 도장의 흔적이 무척이나 그리운 시대를 살고 있다.

 

오늘 마지막날인데 마음속으로 지인들에게 연하장 보내는 건 어떤가요?

송구영신의 시간에 우체국 도장 없이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하거나

불쑥 전화를 해서 간단한 멘트로 눈 내리는 마음을 전하는 건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