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꽃의 슬픔 [박희수]
JOOFEM
2023. 1. 31. 22:14
꽃의 슬픔 [박희수]
기쁨이 없다면 이 꽃들이 다 시들 텐데
그때는 또 무엇으로 뜰을 가꾸시겠어요?
불쌍한 글라디올러스, 제라늄과 안개꽃.
슬픔이 없다면 꽃들이 향기를 잃을 텐데
그때는 또 무엇으로 코를 즐겁게 하겠어요?
불쌍한 글라디올러스, 제라늄과 안개꽃.
아픈 아침
천천히 물처럼 스며드는
이 햇빛을 몸에 바르며
기쁨이 없다면 꽃들이 시들 텐데
그러면 누가 죽은 꽃들을 위해 흐느끼겠어요?
누가 머리에 화분을 얹고 찾아와
낮게 얼굴 숙이며 어두운 꽃잎들을 토하겠어요?
그리고 코가 듣는 노래는 어디로 가나요?
누가 받아줄 코도 없이 슬퍼할까요?
불쌍한 글라디올러스, 제라늄.
분수처럼 핀 안개꽃.
- 물고기들의 기적, 창비, 2016
* 축하해! 하고 내미는 장미꽃다발은 안개꽃으로 받치고 두,세송이 장미가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다.
기승전 장미라면 기승전결의 결은 안개꽃이다.
장미는 소프라노요, 안개꽃은 알토 파트다.
받쳐주는 게 없으면 어처구니가 없는 거와 같다.
슬퍼도 꽃을 놓아주고, 기뻐도 꽃을 들이민다.
꽃다발은 찰나의 슬픔이요, 찰나의 기쁨이다.
금방 시들겠지만 눈에 든 꽃다발은 영원토록 노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