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모로코식 레몬 절임 [안미옥]

JOOFEM 2023. 3. 25. 09:46

 

 

 

 

 

모로코식 레몬 절임 [안미옥]

 

 

 

 

 

너의 안부를 전해 들었다

 

펼치면

전부 펼쳐질 것 같았다

 

입구를 꽉 묶어두었던

가느다란 실이 풀릴 것만 같았다

 

주머니 안에 넣을 수 없었다

주머니는 자주 비워야 하고

빨래를 할 때마다 속을 뒤집어야 했으니까

 

멀리 있다가 가끔 찾아오는

한겨울의 눈처럼

 

녹지 않고 쌓일까봐

겨울이 계속 될까봐

 

얇게 저민

레몬 슬라이스, 소금과 함께

병에 담아 밀봉하였다

 

레몬 절임에도

상온에서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 달이 지나면

 

다 녹아 알맞게 절인 레몬과

뒤섞인 안부를

컵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

휘휘 저어볼 수 있겠지

 

그러면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마셔볼 것이다

 

적어도 따뜻하게 사라질 수 있게

 

              -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문학동네, 2023

 

 

 

 

 

* 레몬! 하면 일단 침이 입안에 감돈다.

한쪽 눈을 감아야 한다.

방식은 모로코식이라도 레몬을 사려면 제주에서 공수해야 한다.

소금은 서해안의 어느 지역에서 천일염으로 사야 한다.

삶은 병에 꾸역꾸역 넣어야 하고 필요한 건 시간이겠다.

먹을 때는 모로코식 모자를 쓰고 먹어야 하나.

 

잘 구운 생선에 뿌려먹어볼까.

비빔밥에 뿌려먹어볼까.

찡그리지 않고 먹으면 누가 상금을 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