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생의 한가운데 [천양희]

JOOFEM 2023. 4. 11. 14:56

 

 

 

 

 

생의 한가운데 [천양희]

 

 

 

 

바람속의 영혼처럼

눈이 날린다

 

홀로 걷다 돌아보니

나홀로 청년들이 실업에 울고 있다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잠을 청한다 청해도 잠은 안 오고

 

짙어진 나뭇잎 속에

아슬하게 줄을 치는

거미를 바라보다 중얼거린다

 

저 줄에도

한 생이 걸려 있구나

 

나도 그것으로 한 생을 견뎠다

 

가진 것에 만족하면

행복하다는 말을 믿으면서

 

행복을 돌돌 말아

너에게 던져줄게

 

깨어진 뒤에야 완성되는 것

그 거룩을

한 줄로 써서 보내줄게

 

생의 한가운데는

움푹 패였다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오늘도

어느 곳에선가

뜬구름 잡는 일이 일어나고

다리에 쥐가 난 사람들이 걸어가고

 

어느날

기러기가 V자를 그리며

낮달을 뚫고 날아간다

 

그래도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

 

바람속에 얼굴을 묻고

생의 한가운데를 생각한다

 

아무튼

성자聖者는

시계를 가지지 않는다

 

             - 애지, 2023년 봄호

 

 

 

 

 

 

* 누구나 허공에 거미줄을 치고 산다.

허공의 한가운데에 뭐라도 하나 걸리면 대박이라고 외칠 것이다.

견디고 또 견뎌야 하는 삶은 시계를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성자는 시계가 필요없다니 그래서 성자인가보다.

사실 젊은이들도 새털 같이 많은 날이니 성자처럼 시계가 필요없다.

젊은이보다 두배를 살게 되면 날마다 시계를 들여다 본다.

거미줄이 뜯겨지고 바람에 너덜너덜해질 때가 되었다는 거다.

생의 한가운데에 매달려 있을 때는 살만하고 견딜 수 있다는 믿음이라도 있지만 

달랑달랑하는 거미줄에 매달려 있을 때에는 믿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청춘은, 젊은이들은 그래도 믿는 구석이라도 있으니

바람에 흔들리더라도 굳세게 버티고 견딜 수 있는 게다.

기러기처럼 V자를 그리며 힘차게 날아가보길 기대해본다.

힘내게, 젊은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