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흰죽 [이덕규]

JOOFEM 2023. 8. 26. 09:45

 

 

 

 

 

흰죽 [이덕규]

 

 

 

 

  어느 가난한 흰빛의 최후를 수습한, 이 간결하고 맑은 슬

픔은

 

  결백을 달이고 달여 치명에 이른 순백의 맑은 독 같아서

 

  험하게 상한 몸속의 사나운 짐승을 제압하는 일에 쓰인

다네

 

  차마, 검은 간 한 방울 떨어뜨려

 

  흐린 제 마음 빛으로나 어둡게 받아야 하는 청빈의 송구

한 맨살이라네

 

 

                  - 오직 사람 아닌 것, 문학동네, 2023

 

 

 

 

 

 

 

 

 

* 누구나 아파본 적 있다.

몸은 쇠하여 아무 것도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이겨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것이 있다.

흰죽 한 그릇이 무어 그리 힘을 얻게 할까만은 

순백의 맑은 독이 독을 이겨내는 까닭에 

어랏, 회복의 기미가 보이니 

흰죽 한 그릇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간장 한 방울이 혀끝을 맴돌 때 정신이 번쩍 들 게다.

 

당신, 흰죽 한 그릇 하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