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유수연]
JOOFEM
2023. 9. 7. 20:08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유수연]
한강이 없다
순식간에 끝나는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놓친 손을 빠르게 다시 잡을 때
온기가 밝아진다
영혼은 빈 유리컵에 뱉은 담배연기
알 수 없어 뒤집어놓곤 한다
바뀐 신호를 따라
인파가 나를 밀어낸다
놓칠세라 어깨를 잡는 얼굴을 바라보며
생경하다 믿어버린
녹슨 생각은 접어두고 펼치지 않았다
여기는 여기에
한가득 나를 채워두고 갈게요
올이 풀린 연기가 되어
커터칼을 뺐다가 넣다가
여전히 그을 수 없는 몸 어딘가처럼
편지도 구석부터 어두워졌다
저기는 저기에
없다
아직도 막차가 다닌다 아직은 보고싶지 않다
누구에게 말해야 할까
-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창비, 2023
* 먹고 살만해지니 마마보이라는 게 생겼다.
치맛바람 휘날리며 학교에 가서 휘젓고 다닌 부모의 슬하에는 이런 마마보이들이
똑같이 학교를 휘저었다.
요즘은 심지어 군대에까지 치맛바람을 휘날리니 군대가 군대가 아니게 되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에게 맡겨야 하고
군대에 가면 소대장이든 중대장이든 맡겨야 하는 것이다.
마마보이를 만들어 이곳저곳을 들쑤시는 20퍼센트의 인간들이 나머지 80퍼센트의 기분을 더럽게 만든다.
기분은 노크하지 않으므로
커터칼을 넣다 뺐다 한다.
영혼을 뒤집어 놓는 이 기분을 언제까지 느껴야 하는지 공분이라는 말이 공허해지기까지 한다.
뿌리 없는 나무가 풀썩 쓰러지는 기분을 유쾌, 통쾌, 상쾌하게 누리는 날이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