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트*의 시대 [주민현]
킬트*의 시대 [주민현]
치마 입은 남자들과 춤을 추었지
스코틀랜드의 어느 광장에서
치마는 넓게 퍼지고
돈다는 것은 계속된다는 거지
체크무늬, 백파이프, 퍼지는 담배 연기 속에서
가끔 멋진 남자를 동경하지
낮게 깔린 목소리도 그럴듯하게
그리 깊지는 않은 역사를 간직한
무늬의 치마를 입고
춤을 추는 우리가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치마는 소리 없이 돌고
돈다는 것은
돌면서 계속 새로운 무늬를 가진다는 거지
돌았니, 하고 물었던 사람이 있었지
조용히 하라는 말도 들었지
치마를 입고 상스럽게 앉은 어느 날이었지
치마를 입고 함께 춤을 춘다고 해서
우리의 성이 같아지는 건 아니지만
한때 노동복이었던
치마를 입은 내가 스코틀랜드에선
남자여도 이상할 건 없지
체크무늬, 바둑알을 두기에도 좋은 타탄무늬
계급과는 먼, 복고풍의 치마를 입은 내가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한때 노동자였던
사람들의 타탄무늬를 그리며
이 거리에서 우리는 모호하게 기워져 있지
깁다, 라는 것은 깊다는 것과 별 관계가 없지
킬트, 그리고 퀼트
그리 깊지는 않은 전통에 대하여
허리나 엉덩이 주변을 감싸는 천
또는 그런 손에 대하여
체크무늬의 치마, 우리를 깁지
* 스코트랜드의 남성이 전통적으로 착용한 스커트
- 킬트, 그리고 퀼트, 문학동네, 2020
* 치마를 입던 남자들은 왜 치마를 입지 않게 되었을까.
나무처럼 서서 소변을 보았기에 치마 걷기가 불편해서 그랬을까.
지퍼라는 게 언제 발명되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지퍼 비슷한 게 생기면서 치마를 내동댕이쳤을 게다.
남자는 치마를 입지 않고 여자는 치마도 입고 바지도 입는다.
불편을 고집하는 남자는 고집쟁이이고
여자는 평안주의자이다.
(혹시 다리에 털이 많아서 여왕님이 못입게 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