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천사의 시
2003년 3월 30일 미국지상군이 상륙하기 전 날, 바그다드부근의 군사목표물들에는 미영연합군의 무차별적인 미사일폭격이 가해졌다.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한다는 명분과 독재자 사담후세인의 폭정으로부터 이라크를 구한다는 구실이었다. 그러나 정작미사일이 떨어진 곳은 후세인의 대량살상 무기고가 아니라 죄 없는 이라크인들의 집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 알리 이스마일 압바스 역시 미군이 주장하는‘당연한 기계적 오차의 실수’에 의한 희생자다. 잘못 날아온 미사일에 열두 살 소년 알리 압바스는 임신 5개월의 엄마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 아빠, 동생, 세명의 사촌, 숙모를 포함해서 열여섯 명의 가족, 그리고 자신의 두 팔을 잃었다. 몸에는 35도의 화상을 입었다.
사담 후세인의 폭정으로부터는 해방되었지만 이미 이라크인들은 너무나 많은 대가를 치렀고, 그 상처와 고통은 너무도 깊었다. 마취제조차 부족한 바그다드의 열악한 병원에서 우연히 한 기자의 눈에 띄어 전 세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이라크 비극의 상징이 되어버린 알리 압바스.
우리가 이 날개 잃은 천사의 이야기에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동정과 연민 때문만이 아니다. 전쟁이 인간에게 얼마나 비극적인 것인가. 자유와 평화만이 인간을 진정 인간답게 만들 수 있다는 진실을 다시 한 번 절실히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책의 에필로그 중에서 발췌)
놀라운 폭음과 파편 속에서 옆에 있던 아빠가 죽고 엄마가 쓰러지고 피 흘리는 동생과 부서진 집 속에서 들리는 신음 소리, 살려 달라는 절규. 이것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라 바로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이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다른 이의 아니 내 가족의 죽음을 바라보아야 하고 나도 또한 팔이 잘려 나가고 잘려진 팔이 아무렇게나 뒹군다. 이것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인가. 악한 영들이 지배하는 바로 이 땅이 지옥인 것이다. 영화에서 람보가 기관총으로 쏘아 죽이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라지만 바그다드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그냥 이라크 사람일 뿐이다. 왜 이런 전쟁의 참상을 겪어야 하는 것일까?
알리 압바스는 치료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가겠지만 미국으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부시는 이라크가 악의 축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미국이 악의 축이며 여기에 동조하는 영국 등의 나라는 악의 들러리인 셈이다. 전쟁은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으며 전쟁을 일으킨 사람은, 혹은 나라는 그 대가를 치러야할 것이다. 폭정을 했던 사담 후세인과 대량 살상무기가 있다는 구실로 전쟁을 일으킨 부시는 정치적 지도자이다. 나라를 통치하는 위정자가 잘못된 생각을 가지면 잘못된 정책 결정을 하게 되며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며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이번 이라크의 전쟁으로 우리가 얻은 것은 전쟁이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한다는 진리이다. 평화를 사랑하며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이 정치적 지도자가 되기를 바라며 지금이라도 전쟁을 멈추고 전쟁을 통해 상처받은 모든사람들이 치유받고 희망을 갖게 해야 한다. 알리 압바스는 컴퓨터 기술자가 꿈이라고 하니 팔이 없어도 눈으로 클릭하고 마음으로 타이핑되는 컴퓨터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희망이다.
육년 전에 내가이란에 업무차 출장을 가서 반달아바스의 해안 방파제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서너 살 먹은 여자 애가 아빠의 손에 이끌려 산책을 하고 있었다(그 때의 온도가 섭씨 45도였음). 인형처럼 예쁘고 귀여워서 내가 쪼그리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고 인사를 했더니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이방인을 바라다본다. 아빠가 뭐라고 이란말로 말하니까 여자 애가 아칫아칫 와서는 내 볼에 뽀뽀를 하고 얼른 돌아가는 것이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웃어 주는 것 밖에는 없었다.
또 테헤란의 시내에서 마주 오던 처녀가 내게 재팬? 하고 묻는다. 내가 코리아! 라고 답하자 오, 꼬레! 라고 하면서 웃으며 지나간다. 이방인에 대해 전혀 적대감이 없다.
전쟁만 아니라면 모두가 한 형제고 자매일 것이다.
이슬람 국가는 어쩌면 복음이 가장 마지막에 전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음이 전해져야 할 곳이다. 광활한 대지가 온통 돌멩이와 모래뿐인 그 곳이야말로 삭막함 가운데에서 희망이 보여지는 곳이 될 것이다.
책 속에 간간이 사진이 들어있는데 그 속에 슬픈 눈을 한 소년 소녀가 삭막함 가운데에 서있다. 우리는 이 소년 소녀들이 전쟁으로 얻은 상처를 치유 받고 천사 같은 마음으로 돌아가서 알리 압바스처럼 컴퓨터 기술자를 꿈꾸기를 간절히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