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익숙해진다는 것[고운기]

JOOFEM 2009. 6. 26. 20:29

 

                                                                                                                     일명, 주페나무^^*

 

 

 

 

 

익숙해진다는 것[고운기]

 

 

 

 

 

오래된 내 바지는 내 엉덩이를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칫솔은 내 입안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구두는 내 발가락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빗은 내 머리카락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귀갓길은 내 발자국 소리를 잘 알고 있다

오래된 아내는 내 숨소리를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오래된 것들 속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바지도 칫솔도 구두도 빗도 익숙해지다 바꾼다

발자국 소리도 숨소리도 익숙해지다 멈춘다

 

그렇게 바꾸고 멈추는 것들 속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사랑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처음엔 바지도 어색해 하고 칫솔도 껄끄럽지만

조금만 지나면 슬슬 익숙해진다.

바지는 엉덩이에 맞추며 엉덩이는 바지에 맞춘다.

칫솔은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복종하듯 누그러뜨린다.

구두뒷굽을 달그락거리며 걷는 걸음걸이라거나

화가 나서 씩씩거린다거나 죄다 익숙해지면 이해가 되는 부분들이다.

사랑이 쌓이면 익숙한 것에서 모든 걸 맡기고 산다.

오래된 것은 좋은 것이여,를 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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