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의 슬픔[곽향련]
의자가 기울어진다
앉았던 내가 일어서면 중심이 스르르 풀리며
뒷모습을 보이는 의자
어디가 잘못됐지?
다리를 잡고 고장 난 흔적을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내게서 등을 돌린 반점 같은 희미한 기억이 있지
그때, 내 등의 서늘함을 껴안느라 며칠 밤을 설쳤다
의자가 네 개의 다리로 앉아 있다는 것은 나의 착각
그것은 제 슬픔을 몸속으로 웅크린 모습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내 서늘한 등을 껴안아 준 의자
등과 머리를 받쳐 주면서도 고통을 참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
이제는 낡은 제 등을 한 번 보라고 내 등을 떠민다
온 종일 내 몸을 그에게 맡기고 앉아 밥을 먹고 휴식을 하는 동안
그는 늘 서서 일해야 하는
한낱 도구일 수밖에 없는 슬픔, 그 안에서
나는 늙어가고 있었다
그는 늘 나를 위해 삐걱삐걱 울었다
* 내가 세상을 사는 동안 내게 기꺼이 고통을 참으며 자신의 의자를 내준 이는 몇명이나 될까
또 내가 나 아닌 남을 위해 기꺼이 고통을 참으며 의자가 되어준 이는 몇명이나 될까
사랑이 한낱 도구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슬픔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걸까
사랑은 슬픔인데
한편으로는 기쁨이니 슬픔과 기쁨은 한몸이 아닌가
내 안에서 의자로 존재해준 그 사랑의 의미가 고통이고 슬픔이고
그럼에도 기쁨으로 알고 우리는 늙어가고 있다.
이제 다들 삐걱대는 몸으로 서로 사랑을 나눈다.
이 세상을 다녀가면서 영혼은 소풍 온 듯기쁨을 누리나 육체는 도구로서 고통과 슬픔을 느끼며 산다.
그게 사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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