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배추벌레의 허공답보 [박완호]

JOOFEM 2011. 11. 9. 22:43

 

 

 

 

 

배추벌레의 허공답보 [박완호]

 

 

 

주름진 초록의 길, 엉성하게 포개진 배춧잎이 잔바람에 푸르르 떨린다

 

배추벌레 하나 울퉁불퉁한 길바닥을 삼켜가며 공중을 걸어간다 한 발 한 발 배추벌레가 지나간 보폭만큼 허공의 부피가 자란다

 

초록이 꺼진 자리에 숭숭 생겨나는 구멍들, 길 하나가 지워지고 다른 길 하나가 문득 떠오른다

 

하나를 버리는 건 결국 또 다른 하나를 낳는 일, 나의 전부라고 여겼던 이가 지워진 자리에 시나브로 피어나던 사람처럼, 혹은 나처럼

 

배추벌레가 사라진 자리에 날아드는 배추흰나비들, 그리고 나의 허공인 당신, 당신들

 

 

 

 

* 회자정리!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또 새로운 만남이 생기고......

길은 언제나 새로 생겨나고 지나온 길이 허공이었었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고

배추벌레는 변태되어 나비가 되고

나비는 자기가 만든 허공을 휘젓고 다닌다.

딱 그만큼의 삶이 주어지고 딱 그만큼의 공간에서 살다 생을 마감한다.

내게 주어진 이 길을 걸으며, 아니 만들며

오늘은 배추벌레처럼 허공에 생긴 내 길을 뒤돌아 본다.

그리고 허공에서 당신들을 만난다. 늘 변하거나 변하지 않는 당신들을......

내일은 배추흰나비로 트랜스포메이션하여 전혀 새로운 허공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