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틈에 뿌리 내린 걸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정호승]
이 봄날에 꽃으로 피지 않아
실패하신 분 손 들어보세요
이 겨울날에 눈으로 내리지 않아
실패하신 분 손 들어보세요
괜찮아요, 손 드세요, 손 들어보세요
아, 네, 꽃으로 피어나지 못하신 분 손 드셨군요
바위에 씨 뿌리다가 지치신 분 손 드셨군요
첫눈을 기다리다가 서서 죽으신 분도 손 드셨군요
네, 네, 손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모든 실패를 축하합니다
천국이 없어 예수가 울고 있는 오늘밤에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희망없이 열심히 살아갈 희망이 생겼습니다
축하합니다
* 네모난 보도블록 사이에 아주 작은 양의 먼지흙이 들어있다.
그 틈에 뿌리를 내린 냉이나 개망초는 양분이 부실해 키가 크지 않다.
어쩌다 내리는 비가 구세주와도 같을 거다.
반면에 보도불록에서 떨어진 숲속에서는 키큰 냉이와 개망초가
미스코리아처럼 늘씬한 키자랑을 하며 무성하다.
숲속은 천국 같을 것이나 보도블록 틈바구니는 희망 없는 지옥일 것이다.
그런데 잘못 뿌리내린 실패를 축하한다니 희망이 생겼다니 감사하다니......
로즈마리의 향기가 참 좋아서 꽤 큰 넘으로 화분에 키웠었다.
양분도 충분하고 물도 자주 주고 햇볕도 잘 쐬어주었지만 끝내는 죽고 말았다.
몇년이 지나 빈 화분에 옆 화분에서 날아온 섬제비꽃이 자라기 시작했다.
양분이 차고 넘쳐서 그랬을까 잎이 내 주먹만큼 크다.
너무 크고 무성해서 꽃을 볼 수가 없다.
이 넘은 바닥에 숨어서 꽃을 피우고 씨앗을 퍼뜨리고 있다.
로즈마리의 실패가 결국은 섬제비꽃의 희망을 낳은 셈이다.
인도사람은 다음 생에서는 신분이 한 계단 올라간다고 믿는다는데
실패한 生도 다음 生에서는 꼭 천국을 만나고 성공안에서 살길 바라며 실패를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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