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내게로 온다
김밥 한줄 들고 월드컵공원 가는 일 [손택수]
점심에 김밥 한줄 들고 월드컵공원에 나가 나무 그늘 아래 드는 일
나무 그늘 아래 앉아
가지와 가지 사이로 들어온
하늘이 나뭇잎 몇을 품고 설레는 걸
뜻 없이 지켜보는 일
옛날에 나는 저 이파리를 보고 아가미를 들었다 놓는 물고기를
떠올리는 버릇이 있었는데
끊은 지 근 일년만에 근질근질 일어나는 수피처럼
시가 떠오를 것 같은 순간마저
그냥 내버려둔 채
하염없이 내버려둔 채
나뭇잎에 내 맘 한자락 올려놓고
불어오는 바람 따라 그저 무심히 흔들려 보는 일
그런 일, 왜 항상 가장 먼 것은 여기에 있는지
닿을 수 없는 꿈들을 옆에 둔 채 아픈 것인지
아득하여라 김밥 한줄 들고 월드컵공원 가는 일
* 비가 오더니 개이면서 다시 매미가 울부짖는다.
여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필사적으로 짝짓기를 하기 위함이다.
시한부 생명이란 필사적이어야 한다.
한쪽에선 귀뚜라미가 운다. 왜 울까.
바람이 선들 불더니 이팝나무에서 힘없이 나뭇잎들이 떨어진다.
치열했던 한여름을 견디느라 힘을 다했는가 싶다.
힘든 계절을 보내고 보니 그늘 아래 들어 돗자리 깔고 하늘 한번 쳐다보는 일도 괜찮을 듯 하다.
모기가 입 삐뚤어지거든 태조산공원에 가서 그늘 아래 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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