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배설 [양정자]

JOOFEM 2015. 11. 19. 15:12

 

 


배설 [양정자] 

 

 

 


평소 말 없고 얌전하여 오히려 걱정되던 우리 반 정숙이

어느 날 우연히 나는 그 애 연습장 훔쳐보게 되었다

언니와 싸운 날

연습장 가득히 그 애는

온통 욕을 휘갈겨 썼다

개 년, 쌍 년, 똥 같은 년, 미친 년, 죽일 년, 망할 년, 여우 같은 년, 똥갈보 같은 년…… 씹할 년

나는 그것을 보고 비로소 안심했다

그 애가 건전하게 잘 자라나고 있었으므로

 

 

 

 

 

 

* 인간의 감정은 희노애락에 따라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한다.

슬픈 일을 당했는데 히죽거린다든지

기뻐할 일인데도 무표정하다든지 하는 것은 분명 감정조절이 안된다는 것일 게다.

화가 나면 얼굴 표정이 상기되고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내던지거나 하게 된다.

하다못해 정숙이처럼 연습장에 욕이라도 갈겨써야 한다.

프랑스 파리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난 것은 IS 국민이 분노조절이 안되어

무고한 파리시민을 살상한 것이다.

반면에 프랑스 시민들은 차분히 감정조절을 하며 우리가 테러에 굴복 않겠다,

일상으로 돌아가 너희를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조용한 복수를 하고 있다.

결국 감정조절이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는 것 같다.

우리에게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분노를 배설하는 훈련을 시키는,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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