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률 그림
독의 일 [박 준]
어머니는 커다란 독에 붕어를 넣고 키웠다 아침마다 지렁이나 유충 같은 것들을 잡아 먹였
다 어느 날에는 붕어가 병이 들었는지 비늘이 헐고 흰 배를 내보이며 옆으로 기울었다 부엌
에서 굵은 소금과 고춧가루를 가져와 독에 뿌린 것은 어머니였다 며칠 후에는 붕어의 굽은
등이 펴지고 비늘에서도 다시 윤기가 났다 죽고 싶었던 시절마다 죽을 것 같이 아픈 일들로
견디고 어루만져왔던 어머니의 독(毒)이 만든 일이다
* 천사가 사는 동네에 사탄도 슬쩍 밀어넣고
고요한 물속에 지랄맞은 미꾸라지도 넣고
심지어는 메기 같은 놈도 풀어 착하게 사는 물고기들을 괴롭히게 한다.
다 죽어가는 붕어에게 독한 약(藥)을 풀어 살든지 말든지 못살게 한다.
독하게 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교훈일 게다.
죽을 것 같이 아플 때 먹어야 하는 인생의 쓴맛은 그래서 독이지만 약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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