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점 [구광렬]
새장 속 세월을 감지키 위해선 시, 분, 초 외 별다른 시간의 미립자를 필요로 한다
저쪽 영역에서 이쪽 영역까지의 비행시간은 탄지경(彈指頃).
새는 하나 손가락 튕기는 경각에 철새에서 텃새로 텃새에서 철새로 거듭난다
곤줄박이 한 마리, 막 철사 몇 줄을 넘어 철새가 되고 세상에서 가장 짧은 계절이
건만 본능은 둥지를 트라하고, 딱딱한 철새장 속에 말랑거리는 건 종이쪽지들뿐.
'이쪽에서 먼저 사랑을 고백해 보세요'
'사업이 날로 번창할 겁니다'
'당신 땜에 이별이란 낱말이 생겼어요'
'나쁜 소식이 들려와도 좌절하지 마세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에요'
'세상에 어디 그 사람뿐인가요 헤어지세요'
'세상엔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없습니다'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힘내세요'
곤줄박이 다시 철사 몇 줄을 넘어 텃새가 되고 세상에서 가장 작은 영역이건만
본능은 텃세를 부려라하고, 하지만 새라곤 오직 한 마리뿐.
새장 속 세월을 감지키 위해선 시간이 필요 없다 저쪽 철사에서 이쪽 철사까지
의 비행시간은 500원. 다만 단돈 500원에 둥지를 빼앗음에 미안하다
덕지덕지 종이쪽지들로 만들어질 둥지의 바깥쪽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나
쁜 소식이 들려와도 인연이에요 고백해 보세요 헤어지세요 하늘이 생겼어요'
* 오늘의 운세를 보니 '오늘은 타인과의 불화를 피하세요' 한다.
우리가 사는 공간이 지구라는 큰 공간이지만 실제 사는 공간은 겨우 동네일 뿐이다.
동네안에서 오늘 만날 사람은 몇이나 될까.
불화의 이유가 사랑 아니면 돈이니 이 두 가지에 연루된 사람이 아니라면 불화고 말고가 없다.
새가 물어주는 종이쪽지가 모두 열두 개쯤일까, 스물네개쯤일까.
'세상엔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없습니다'란 새점을 받아들었다면
그저 운이 좋게 살고 있구나, 해야 한다.
어디선가는 폭탄이 터지고 기차가 탈선하고 지진이 나고 화산이 터지고
육이오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라고 하는데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새점을 볼 수 있다니 이건 운이 아주 좋은 거다,싶다.
운명이 새장안에서 너무나 단순하게 바뀐들 그게 그거지만
새장안에서의 생이 전부일 수도 있는 사람에게는 바뀌는 변화가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오늘은, 탄지경일지라도 텃새가 아닌 철새로 거듭나서 동네를 벗어나볼까나.
그러면 혹시 새점이 바뀌어
'오늘은 누구보다 당신에게 밝은 기운이 함께 하는 날 입니다.'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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