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그림자나비 [김명서]

JOOFEM 2016. 7. 6. 22:11


                        * 5년전까지만 해도 굴삭기의 엔진 냉각장치를 볼보에 납품했었다. 모형품이지만 근사하다.






그림자나비 [김명서]





유리동굴 밖이 우주 끝이다 절대 나가지 마라

모친의 유언

뼛속을 파고든다

컴퓨터와 회전목마를 들여놓고 빗장을 닫는다


이끼 핀 천장에 불치의 고독이 종유석처럼 자라고 있다


자신의 그림자만이 진실이라고 믿고

"망루에 올라가 먼 곳을 바라보라"는

유리벽에 돋을 새김 된 메아리를 지우는 사이

불혹에 걸렸다


어느 인류학자는

'종의 기원'은 오류투성이라며

머지않아 인간이 로봇과 이종교배를 할 것이라는

'유엔미래보고서'를 발설하고

정부에 대한 믿음의 비를 백분율로 나타내는데

절반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세상은 극점을 연출하는지

외계인을 닮은 영장류들

가늘고 긴 다리에 붙은 빨판을 상대의 가슴에 대고

단숨에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각자 뇌의 질량과 부피가 다른 탓에 그 용량만큼

소화하고 저장한다

누구나 만족한 낯빛이다


일부는 옛것이 그리워서 남루한 기억도 사고팔고

일부는 우량유전자를 밀매하고 있다


저 불쌍한 것들을 구해야겠다고

막 직립보행을 시작하려는 그를

철컥,

굴착기가 수거해 간다







* 시인중에서 가장 박식한 시인이 아닐까 한다.

유엔미래보고서를 안다는 건 그 책을 읽었다는 뜻일 게다.

그 책을 읽으면 정말 미래가 암담하긴 하다.

실직자가 넘쳐나고 소수의 직업을 가진 자들이 낸 세금으로

예컨대 일인당 백만원씩 정부가 주는 돈으로 생활해야 하는 비참함.

스위스가 국민투표로 거부한 게 정부가 주겠다는 돈이었다.

역시 스위스는 선진국이다.

시인은 국립국어원의 의견에 아주 충실하다.

굴착기냐, 굴삭기냐라는 논쟁이 있는 가운데 국어원이 지정한 굴착기를 선택했다.

우리가 아는 포크레인은 포크처럼 생긴 버켓이 달린 크레인이다.

포크레인은 굴삭기 혹은 굴착기를 만드는 회사 이름이다.

현대나 대우 같은 회사이름인데 장비 이름처럼 쓴다. 우리나라에서만.

굴착기는 아스팔트를 뚫거나 암반을 뚫는 장비이고

굴삭기는 흙 따위를 파고 버켓에 담아 트럭에 실어주는 장비이다.

일자형 바를 달면 굴착기이고 버켓을 달면 굴삭기이다.

한 장비에서 두가지 기능을 다 하는데 굴삭기의 기능이 대부분이다.

현장에선 굴삭기라는 명칭을 많이 쓰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으니

그냥 영어로 엑스캬베이터라 부른다.

(신기하게도 김명서시인의 시에는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단어가 많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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