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명희 화가 그림.
달빛 [이진흥]
모두가 잠들고 창가
유리컵 속 찰랑거리는 어둠으로
당신은 온다
피뢰침에 찢긴 속살, 푸른 정맥이
몇 가닥 아파트 옥상에 걸리고
당신의 흰 목 그늘의 일부가 흔들린다
깊은 밤, 아무도 모르게 물 마시고
어여쁜 눈빛으로 당신은 돌아선다
재빨리 나는 본다, 창가에 놓인
유리컵 가장자리 아, 지울 수 없는
슬픔 하나가 묻어 빛난다.
* 깊은 밤에 일어났는데 유리컵에 슬픔 하나가 묻어난다니
내 얘긴가 싶다.
젊을 때야 맥주 이천씨씨쯤 마시고 방광이 터질 것 같아 잠에서 깼겠지만
나이 오십이 훨씬 넘어서 깼다면 방광이 한없이 약해졌다는 것이니
슬픔이 묻어날만 하다.
그나마 어둠 속에서 달빛이 위로를 하고 용기를 주니 이 얼마나 기쁜가.
이제는 몸의 구석구석 하나하나 아껴 써야 되는 나이.
아무도 모르게 일어나도 달빛이 주는 기쁨에 살만한 나이가 아닌가.
슬픔이 아닌 기쁨으로 슬쩍 바꾸는 게 좋겠다. 이 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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