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어준다는 것 [박서영]
저수지에 빠졌던 검은 염소를 업고
노파가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등이 흠뻑 젖어들고 있다
가끔 고개를 돌려 염소와 눈을 맞추며
자장가까지 흥얼거렸다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을 듣는다는 것
그의 감춰진 울음이 몸에 스며든다는 것
서로를 찌르지 않고 받아준다는 것
쿵쿵거리는 그의 심장에
등줄기가 청진기처럼 닿는다는 것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약국의 흐릿한 창문을 닦듯
서로의 눈동자 속에 낀 슬픔을 닦아주는 일
흩어진 영혼을 자루에 담아주는 일
사람이 짐승을 업고 긴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한없이 가벼워진 몸이
젖어 더욱 무거워진 몸을 업어주고 있다
울음이 불룩한 무덤에 스며드는 것 같다
- 시를 어루만지다, 김사인, 도서출판b, 2013
* 박서영 시인의 부고는 많은 사람을 슬프게 하지만
정작 떠난 시인은 누군가의 등에 업혀 흩어지는 영혼이 되어
무덤에 스며들 게다.
그 누군가는 신이며 자연이며 사랑하는 이의 영혼이다.
슬픔과 고통이 없는 곳에서 평안을 누리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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