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심통부리기 [김광림]

JOOFEM 2019. 5. 12. 21:32







심통부리기 [김광림]





 버스 앞바퀴가 구르는

굽 높은 빈자리 옆에 앉으려니

한 중년 여인이

서슴없이 백발 앞에 다가와

얼마간 주춤대고 서 있더니

불쑥 내뱉는 소리가

―나 허리가 안 좋아서

하며 은근슬쩍 내 자리를 양보하란다

순간 나는

―난 심사가 안 좋아서

못 내놓겠다는 듯이

잠자코 버티고 있으려니

다짜고짜 내 무르팍을 가로타고

냉큼 바퀴 윗자리에 앉아버린다

진작 그럴 것이면

쉬 들어갈 수 있도록 비켜줬을 텐데

오오라 피차간 안 좋은 데가 있군 그래


                - 2004 올해의시 '새들에게는 지옥이 없다', 다시,2004







* 지하철에서 자리때문에 팽팽한 신경전을 편다는 것도 참 피곤한 일이다.

한 중년 여인이 빛의 속도로 내가 앉을 자리를 냉큼 앉는 경우도 많지만

그러려니 하는 게 심사가 편하다.

(아이고 잘 했소, 누님.)

고속도로에서 일차선과 사차선을 오가며 앞지르기를 하는 차를 보면

나도 심사가 뒤틀린다.

차가 좀 많은 주말에 더 심사가 뒤틀리는데

어느 순간 일차선을 고수하는 내가 앞설 때가 있다.

그때부턴 나도 그차가 앞지르기 못 하도록 절묘하게 간격을 좁혀주어

다시는 차선변경 못 하도록 한다. 일종의 심통부리기다.

(이 자식, 나는 한놈만 팬다. 일차선 고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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