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통부리기 [김광림]
버스 앞바퀴가 구르는
굽 높은 빈자리 옆에 앉으려니
한 중년 여인이
서슴없이 백발 앞에 다가와
얼마간 주춤대고 서 있더니
불쑥 내뱉는 소리가
―나 허리가 안 좋아서
하며 은근슬쩍 내 자리를 양보하란다
순간 나는
―난 심사가 안 좋아서
못 내놓겠다는 듯이
잠자코 버티고 있으려니
다짜고짜 내 무르팍을 가로타고
냉큼 바퀴 윗자리에 앉아버린다
진작 그럴 것이면
쉬 들어갈 수 있도록 비켜줬을 텐데
오오라 피차간 안 좋은 데가 있군 그래
- 2004 올해의시 '새들에게는 지옥이 없다', 다시,2004
* 지하철에서 자리때문에 팽팽한 신경전을 편다는 것도 참 피곤한 일이다.
한 중년 여인이 빛의 속도로 내가 앉을 자리를 냉큼 앉는 경우도 많지만
그러려니 하는 게 심사가 편하다.
(아이고 잘 했소, 누님.)
고속도로에서 일차선과 사차선을 오가며 앞지르기를 하는 차를 보면
나도 심사가 뒤틀린다.
차가 좀 많은 주말에 더 심사가 뒤틀리는데
어느 순간 일차선을 고수하는 내가 앞설 때가 있다.
그때부턴 나도 그차가 앞지르기 못 하도록 절묘하게 간격을 좁혀주어
다시는 차선변경 못 하도록 한다. 일종의 심통부리기다.
(이 자식, 나는 한놈만 팬다. 일차선 고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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