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좋은 것 커다란 것 잊고 있었던 어떤 것 [유희경]

JOOFEM 2019. 11. 27. 12:17

 

                                                         칸쵸는 늘 아들의 사진 모델이 되어줬다. 기꺼이.

 

 

 

 

 

 

좋은 것 커다란 것 잊고 있었던 어떤 것 [유희경]

 

 

 

 

 

이렇게 추울 때 고양이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골목은

그 골목의 어둠은 좋은 것

좋고 위험한 것 위험하고

아슬한 것 헤드라이트를 켜고

지나간 자동차의 뒷모습처럼

커다란 것 그 속에 숨어 있는

어떤 것 이렇게 추울 때는

옆을 더듬게 되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없으므로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

좋은 것 어쩔 수 없이 그런 것

고양이가 운다 추워서 그런가 봐

말해보는 것 고양이만을 위한

따뜻한 물그릇을 놓는 것 물그릇 속

물이 얼어붙는 것 따뜻했던 얼음이

발에 채였을 때 주르륵 미끄러져

길 한복판에 놓이는 이상한 것

이상하고 깨질 것만 같은 것

깨질 것만 같은 소리에 놀란

아무것도 아닌 당신을 달래려고

다시 옆을 더듬게 되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을 더듬었다고

씁쓸하게 웃어보는 그런 것 그것은

커다란 것 헤드라이트를 켜고

지나가는 자동차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춥고 커다란 것 내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 잊고 말하지 못한 것

실은 고양이가 아니어도 좋은 것

골목이 자동차의 뒷모습이

물그릇과 당신이 아니어도 좋은 것

그것은 역시 좋은 것 좋아서

커다란 것 다시 잊고 말 어떤 것

 

                       -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문학과지성사, 2018

 

 

 

 

 

 

* 손가방에 참치캔을 넣고 다니다가 길고양이를 만나면

캔을 따 놔주고 가는 친구를 안다.

그것이 아주 조그만 사랑이겠지만 크낙한 사랑이라는 것을 잘 안다.

나도 21세기 초반에 유기묘를 분양 받아 키운 적이 있다.

큰 딸이 혼자 서울에 남겨졌을 때 외롭지 말라고 준 것이었는데

천안에서 같이 살게 되면서 십수년을 함께 했다.

단독주택 살 때에는 마당에서 토끼와 함께 키웠고

아파트에서 살 때에는 실내에서 키우다 털이 많이 날려서 베란다에서 키웠다.

내가 아끼던 관음죽을 토끼와 고양이가 뜯어먹어서 참 밉기도 했지만

말년에는 아들이 회사 숙소에서 일년간 돌보았다.

열다섯살쯤의 나이에 콩팥이 망가져 갑자기 죽게 되었지만

거의 십삼년은 내가 매일 밥 주고 똥 치워 주었던 정이 있어서

그녀석의 죽음은 커다란 상실감을 주었다.

(그 상실감에 내 다시는 동물은 키우지 않으리.)

사랑을 줄 수 있어서 좋은 것, 나를 핥아주고 바라봐 주는 (사랑이) 커다란 것

잊고 있었던 어떤 고양이, 칸쵸인 것.

 

 

 

 

 

 

                                                          2017. 12 마지막 모습. 칸쵸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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