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天葬) [강신애]
나는 야크 똥을 주우러 다니던 아이
설수로 목을 축이던 처녀
놋주발을 돌리던 라마승이네
죽은 것 다시 죽여 살아나는 활개
냄새가 다른 피, 코와 팔다리들 삭혀 부유하는
천년의 짐승이네
나는 높은 곳 연모하던 살점들이
빛으로 짓고 빛으로 글자를 써 빛의 헝겊을 날리는
하늘사원의 전서구
모든 길은 허공으로 통해
부풀어오른 설풍마저 질긴 구애를 하네
신조(神鳥)도 설산에 푸른 그림자를 매달고
까마득한 공복에서 출발하네
긴 겨울과 희미한 볕뉘의 제물
누군가의 전 생애가 불이 되고 물이 되어가는 곳에
발톱과 초점이 나의 전부일 뿐
땀에 젖은 모자가 세 번 원을 그릴 때
튕기듯, 붉은 언덕으로
- 어떤 사람이 물가에 집을 지을까, 문학동네, 2020
* 야크똥을 소중하게 들고 가던 아이의 천진난만함이 생각난다.
들판에서 얼기설기 지은 집에 살면 따뜻한 온기를 주는 땔감인 야크똥.
수도라고는 없고 시냇물도 잘 없을 설산에서 눈을 녹여 물로 마시는 자연녀의 모습도 떠오른다.
온 몸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한 생을 살다 불이 되고 물이 되어가는 게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 사라지는 풍장도 있고
독수리의 밥이 되는 조장도 있고
자연에서 왔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든 것이 천장이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줄만 알았더니
하늘에서 왔다가 하늘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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