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 [김신용]
채 자라다 만 발육부진 같은, 시간이 거꾸로 흐른 것 같은, 태어나자마자 이미 늙은 것 같은 뿌리를 매달고 저기, 열무가 꽃을 피우고 서 있다. 그래, 세상은 너를 열무라고 부르지만, 너는 열등한 식물이 아니다. 너의 시계는 거꾸로 가지도 않는다. 너는 오직 네 뿌리만큼 작은 숨결을 가지고, 四季가 없는 너의 계절을 만든다. 부드러운 잎과 줄기는 여름 시골 장마당의 열무국수 같은, 그렇게 작은 세계를 꿈꿀 뿐이다. 너의 뿌리는 그런 작은 세계에 머물며, 작은 풀꽃들과 어울려 작은 풀꽃 같은 꽃을 피운다. 그것이 이 지구상에 태어난 너의 의미―. 오직 그것 하나로 뿌리 내려 작은 풀꽃 같은 꽃을 피우며 네가 선 땅을 밝힌다. 그래, 그것이 이 지상에 발을 디딘 이유―, 그러나 네 뿌리를 보면 안다. 그 발육부진 같은 뿌리 속에 어떤 질긴 심이 들어 있는지, 네가 찰나의 섬광 같은 꽃을 피우기 위해 뿌리 속을 어떤 강인함으로 채워 놓았는지―. 그래, 어떤 눈물겨운 작은 숨결이 대지에 뿌리를 내려, 그렇게 백치 같은 환한 낯빛의 꽃을 피우고 있는지―.
- 계간 백조 2020년 겨울호
* 언제였던가, 어느 평론가가 열무꽃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열무란 여린 무우 싹을 열무라 하였으니 꽃을 피울리가 없기때문이다.
요즘은 개량종으로 열무가 따로 나온다니 열무꽃을 피운다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리디여린 열무가 꽃을 피운다니 우주의 신비함이 이 꽃에 큰 의미를 갖고
환한 낯빛의 꽃을 피운 셈이다.
작은 세계를 꿈꾸는 자들에게는 이 작은 세계가 꿈을 이루는 지상낙원이다.
작은 풀꽃이 눈으로 들 때가 가장 평화롭다.
이번 주에는 양지바른 곳에서 노루귀나 봄까치꽃을 볼 수 있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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