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배영옥]
붉은 뇌수로 꽉 찬 수박을 싣고
트럭이 왔다
수족이 다 잘려나가는 고통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한 생애가 완성되는
수박
저 사내는 머리통만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이다
엽기적인 살인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기 전에
어서 빨리 해치워야 한다고
붉은 뇌수가 곪아터지기 전에
서둘러 처분해야 한다고
몇 번의 짧은 흥정도 없이
옛소, 수박!
사내가 안겨주는 머리통을 받아들고
염치도 없이 돌아와
쓸쓸히 혼자 식탁에 둘러앉아
쩍 갈라터진 뇌수를
빨아먹는다
-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 문학동네, 2019
* 칠월 한달을 수박으로 버틴 것 같다.
큰수박 한 통을 사서 퇴근하면 식사후 두쪽씩 먹으며 더위를 잊었던 터.
두어 통을 먹고나니 좀 물리는 듯 해서 복숭아를 먹기 시작했다.
날이 더워서일까 복숭아도 참 맛이 있고 여름에는 역시 여름과일을 먹어야 한다.
팔월 한달은 한물 가긴 했지만 참외를 깎아먹고 있다.
열대야가 사라지고 있는 요즘은 더위가 한풀 꺾여서인지 상큼한 사과가 맛이 있다.
아뭏든 올여름은 수박으로 버티어서 수박에게 고맙다 인사해야 한다.
고맙다, 수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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