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플라스틱 인간 [최순섭]

JOOFEM 2022. 2. 18. 22:56

흐흐, 커피를 마시면 저 화학구조들이 온몸을 흐르겠지.

 

 

플라스틱 인간 [최순섭]

 

 

 

 

어렴풋이 몇 대째인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유전자

몸속에는 플라스틱 피가 흐르고 있어

플라스틱 자궁에서 플라스틱 탯줄을 달고 태어나

플라스틱 인간으로 살아왔어

눈물도 모르는 플라스틱 여자 차가운 성질의 플라스틱 남자

열 받으면 녹아내리는 플라스틱 사랑으로 

세상에 툭 던져놓은 원치 않는 플라스틱 아이는 

플라스틱 비행기에 몸을 싣고 

플라스틱 찬란한 도시로 유학을 떠나지

버림받을 걸 알면서 껌딱지처럼 달라붙는 

플라스틱 여자 플라스틱 남자

감각이 없는 플라스틱 사랑은 구름 속에 모여 검은 파티를 하지

하늘을 날아다니며 플라스틱 비를 뿌리고

플라스틱 초록 바다에 꼬리 흔들며 헤엄쳐가는 플라스틱 물고기

파도가 밀려오면 지칠 줄 모르고 

뼛가루가 스밀 때까지 갯바위에 살을 부비는 

플라스틱 사랑은 죽지도 않아

흔적없이 떠나는 차가운 이별

 

            - 계간 시와편견, 2021 겨울호

 

 

 

 

 

 

* 모나미 볼펜을 지우개와 함께 필통에 넣으면 볼펜이 끈적끈적해지고

볼펜과 지우개가 붙어버린다.

어? 이놈들이 사랑하나봐!

볼펜은 플라스틱이고 지우개는 고무다.

하지만 플라스틱과 고무는 화학구조가 같아서 서로 하나가 되어 붙어버린다.

아주 예전에는 고무다라이에 김장김치를 담궜지만

사실 고무다라이는 온갖 플라스틱을 구별하지 않고 한꺼번에 녹여 만든 잡플라스틱이다.

그러니 서로 다른 플라스틱 가루가 화합하지 않고 여기저기 묻어나간다.

이 가루들은 모두 어디로 흘러갈까?

플라스틱의 사용량이 점점 많아지면서 그 가루가 바다로 흘러가 멸치똥의 절반이 되고

멸치를 우린 육수를 맛있다고 먹으니 우리의 몸도 알게 모르게  플라스틱인간이 되었을 게다.

페트병을 분리수거해서 재활용한다지만 사실은 대부분 쓰레기장으로 가고 태워 없애게 된다.

불편해도 유리그릇이나 도기그릇을 사용해야 하고 그래야 자연환경을 후세에 물려줄 수 있다.

카페에서 테이크아웃하는 것도 절제하고 머그컵을 사용하는 게 좋겠다.

얼죽아,가 얼어죽어도 아이스커피라는데

얼죽플, 을 하다가는 인간의 혈관에 플라스틱이 둥둥 떠다니고 이것들이 끈적끈적 뭉치면 흔적없이 떠날 수도 있다.

코로나로 배달음식을 많이 취하면서 1회용 플라스틱의 사용량이 많아지니

플라스틱 세상에 사는 플라스틱 인간들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