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사이를 말하다. 1 [송연숙]

JOOFEM 2022. 4. 6. 19:51

 

 

 

 

사이를 말하다. 1 [송연숙]

 

 

   

 

사이는 감정이 살고 있는 집

정말 예민해

입술에 검지를 대고 발꿈치를 들고 걸어야 해

와장창 소리가 들린다면 이미 틀어졌거나 틀어지기 쉬운 사이

 

꽃과 꽃 사이를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듯

기분 좋은 사이가 되려면

꽃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해

바람의 결을 읽듯

꽃의 마음을 잘 읽어야겠지

 

시간과 시간 사이에는

냉정한 사람이 살고 있어

결과를 평가할 때 사이의 눈은 날카롭게 빛나지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을 끼워놓고 힘들었던 경우도 있어

그럴 땐 펼쳐놓은 일들을 혹은 사람들을 얼른 거둬들이거나

다음 장으로 넘겨주기도 해야 해

그래야 사이도 숨을 쉴 수가 있지

 

시간과 시간 사이에는

질투심 많은 사람도 살고 있어

꽃처럼 좋은 사람과 있을 때

봄처럼 신나는 일을 할 때는 사이를 확 좁혀버려

벌써 이렇게 됐나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시간이 엉덩이를 털지만

 

사이는 기억의 저장창고

어떤 사이가 됐건

어떤 사건이 됐건

되돌리지는 못해도 되돌려 볼 수는 있지

산과 산 사이에 계곡이 있듯이

이제는 맑은소리 나는 기억들로 사이를 충전하고 싶어

 

너와 나 사이에는 무엇이 있나

 

겨울과 여름 사이에 봄이 있듯이

너와 나 사이에 봄을 끼워 넣고 싶어

시냇물이 흐르고, 새가 울고, 꽃이 피는

그런 봄

 

         - 월간 모던포엠, 2022년 4월호

 

 

 

 

 

* 시간과 시간의 사이가 있고 공간과 공간의 사이가 있다.

그리고 너의 마음과 나의 마음의 사이가 있다.

그 사이 사이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감정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살아서 움직이는 것도 같다.

때로는 손에 잡히기도 하고 잡히지 않기도 하고.

사이 사이에 적당함이 존재할 때는 수많은 사연과 소설 같은 이야기가 살기도 하지. ​

사이가 사라지고 없을 때는 사이에 있던 모든 것들은 남을까, 남지 않을까.

생과 몰의 사이가 사라지고 없게 되면 흔적은 어디로 가나.

사이가 사라졌는데 어디 가서 찾을 수 있나.

 

한때 사이월드에 담아두었던 사연들은 지금 찾을 수 있을까.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사이월드냐? 싸이월드냐? 부활했다고는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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