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가는 길이 더 멀고 외로우니 [박상순]
의자에 내 몸을 올려놓습니다. 올려놓고 보니 불편한 의자
입니다. 이번에는 의자를 몸 위에 올려놓아봅니다. 무겁습
니다. 의자를 내려놓고 나 자신과 맞서보기로 합니다. 온
갖 의자들이 기억의 창고에서 쏟아져나옵니다. 한동안 그
것들과도 맞서보지만 여전히 의자 하나 놓여 있습니다.
저 하늘엔 비행기가 갑니다.
그래서 나도 길을 나서봅니다. 우연도 필연도 아닌 길을
향해 걷기 시작합니다. 혼자 걷는 것이 심심하기는 하지만
큰길을 따라 강변까지 나갑니다. 계단을 내려가면 강입니
다. 오른발 왼발. 강변에선 함부로 쓰레기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오른발 왼발. 갑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간다고 합니다.
강변에 나와서 바람을 쏘입니다. 눈을 감아봅니다. 내 기
억들이 바람 속에서 눈을 뜹니다. 내 몸은 풀밭에 누워 있
습니다. 누워 있는 몸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바람을 쏘인
탓인지 기억이 자꾸 가벼워져 몸밖으로 새나갈 것 같습니
다. 하나 둘. 새어나갑니다. 새나가고 맙니다.
저 하늘엔 비행기가 갑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간
다고 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길이 더 멀고 외로
우니 나는 잠시 여기서 멈춰 있으라고 합니다.
- 슬픈 감자 200그램, 난다, 2017
*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은데 어쨌든 우리는 매일 길을 걷는다.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하고 자동차를 몰고 가기도 한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길은 자동차로 가는 길보다는 아무래도 멀기만 할 것 같다.
블라디보스토크 정도는 그래도 가까운 편이지만
런던을 간다든지 뉴욕을 간다든지 먼곳을 간다면 정말 몸이 견디기 힘들 게다.
이 길은 누구를 위해 가는 길이며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길일까.
불편하게도 의자 하나 들고 길을 걸으면
때로는 의자에 앉아 쉬었다 갈 수 있지만
삶의 무게를 견디며 걷는다면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나겠지.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기만 한데 지나가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나보다 더 멀고 외로울테니 내가 위로를 받는다는 걸까.
아니면 잠시 불편했던 의자를 내려놓고 나의 몸을 쉬게 하려는 걸까.
쉬었다 가도 끝없는 길이 마침내는 끝이 나타난다.
의자가 쉼터가 되어줄테니 가끔은 쉬었다 가자.
마침내 끝이 나타날 때, 이만하면 됐다!를 외치며 두 손 모아 평안의 기도를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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