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비가 온다 [이미산]

JOOFEM 2022. 7. 22. 21:05

비온 뒤 오베르의 풍경, 빈센트 반 고흐 그림

 

 

 

비가 온다 [이미산]

 

 

 

 

  새들이 사라졌다고 새들의 노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빗소리 듣고 있을 눈동자에 내가 어룽진다면 우리는 함

께인 것이다

 

  비는 걸어서 가고

  걸어서 온다

  거리를 지우며

 

  비, 비, 비, 중얼거려도

  비루하지 않아 다행이고

 

  서로의 간격을 유지한다 바닥이라는

  수평이 될 때까지

 

  귀환의 유전자를 가졌다 우주를 흠뻑 적시고 돌아오

  는 우리의 뒷모습이 되었다 각자의 주머니에 남겨지는 

  비의 차분한 음성

 

  잡을 테면 잡아보라고

  비극적일수록 진실에 가까운 표정으로

 

  고요하다 사랑 이후를 보여주듯이 아득해졌다면 새로

운 사랑이 도착한 것이다 닮은 듯 서로 다른 이별처럼

 

  비가 그치면 새들이 먼저 노래한다 나무는 저장한 비

를 조금씩 꺼내 먹고 이파리는 목이 메어 후드득거린다

 

  충분히 젖었으므로 다시

  이별을 키워낼 준비가 되었다

 

          - 궁금했던 모든 당신, 여우난골, 2022

 

 

 

* 비는 후드득 후드득 내리기도 하고

삼겹살 구울 때 나는 차아아 소리와 닮아 내리기도 하고

귀도 즐겁지만 쏴아아아 내릴 때는 속이 다 시원해진다.

비가 오지 않아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낼 때 모든 게 비참해질 것만 같았다.

다행히, 다행히 장마라는 비가 오고 찰랑거리는 물을 바라보게 하고

오오오, 마음은 차분해졌다.

소나기를 한바탕 몸으로 받아내고 비 피할 곳에서 몸이 마를 때

안온함을 느껴 보았는가. 몸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대지는 사랑으로 가득한 것만 같다.

비그치고 다시 찾아오는 평화는 잘 마른 빨래처럼 찾아온다.

쨍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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