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이미산]
새들이 사라졌다고 새들의 노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빗소리 듣고 있을 눈동자에 내가 어룽진다면 우리는 함
께인 것이다
비는 걸어서 가고
걸어서 온다
거리를 지우며
비, 비, 비, 중얼거려도
비루하지 않아 다행이고
서로의 간격을 유지한다 바닥이라는
수평이 될 때까지
귀환의 유전자를 가졌다 우주를 흠뻑 적시고 돌아오
는 우리의 뒷모습이 되었다 각자의 주머니에 남겨지는
비의 차분한 음성
잡을 테면 잡아보라고
비극적일수록 진실에 가까운 표정으로
고요하다 사랑 이후를 보여주듯이 아득해졌다면 새로
운 사랑이 도착한 것이다 닮은 듯 서로 다른 이별처럼
비가 그치면 새들이 먼저 노래한다 나무는 저장한 비
를 조금씩 꺼내 먹고 이파리는 목이 메어 후드득거린다
충분히 젖었으므로 다시
이별을 키워낼 준비가 되었다
- 궁금했던 모든 당신, 여우난골, 2022
* 비는 후드득 후드득 내리기도 하고
삼겹살 구울 때 나는 차아아 소리와 닮아 내리기도 하고
귀도 즐겁지만 쏴아아아 내릴 때는 속이 다 시원해진다.
비가 오지 않아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낼 때 모든 게 비참해질 것만 같았다.
다행히, 다행히 장마라는 비가 오고 찰랑거리는 물을 바라보게 하고
오오오, 마음은 차분해졌다.
소나기를 한바탕 몸으로 받아내고 비 피할 곳에서 몸이 마를 때
안온함을 느껴 보았는가. 몸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대지는 사랑으로 가득한 것만 같다.
비그치고 다시 찾아오는 평화는 잘 마른 빨래처럼 찾아온다.
쨍하고!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침묵의 미로 [신철규] (0) | 2022.07.25 |
---|---|
시클라멘 [송종규] (0) | 2022.07.23 |
눈을 뜰 수 있다면 [박은지] (0) | 2022.07.21 |
빛멍 [이혜미] (0) | 2022.07.17 |
외출 [고민형] (0) | 2022.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