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와 [고민형]
친구가 '새와 미술관'에 갔다고 했다. 나도 가고 싶었다.
그곳에 가고 싶었던 이유를 당신은 잘 모를 것 같다. 미술
관은 새를 자기 안에, 꽃을, 영화를, 그림을 전시실에 둔다.
나무와 미술관보다, 새와 미술관에 가고 싶고, 사탕과 미
술관보다, 지하철과 미술관보다, 맥주와 미술관보다, 눈과
미술관, 눈과 미술관은 보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밥과 미
술관보다, 티베트와 미술관보다, 양말과 미술관보다, 마룻
바닥과 미술관보다, 치즈와 미술관보다, 새와 미술관에 가
고 싶었다고 말하면 당신은 고개를 끄덕여줄 것 같다. 친
구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사실은 세화 미술관이
었지만, 새와 미술관이어도 괜찮다고 이해해주는 친구들
과 당신은, 영원히 알지 못할 거야. 이제 잠이 오고 자고 일
어나면 다시 그곳으로 갈 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있으니까
괜찮다. 세화 미술관으로 가는 길엔 새가 지저귄다. 광화
문에는 광화문 광장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찬성하는 사람
들이 걷고 있다. 그들의 집, 오피스텔, 아파트를 지나면서
내가 떠올린 나무, 치즈, 맥주를 모르겠지. 그럼! 알지 못
하겠지. 당연하지.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까.
- 엄청난 속도로 사랑하는, 아침달, 2022
* 세화미술관이 어디에 있는 거지? 검색을 해보니 경희궁 바로 맞은 편 빌딩에 있는 거다.
시네큐브 영화관이 있는 그 빌딩.
검색을 하지 않았다면 '새와 미술관'이 정말 있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백일홍나무가 배기롱나무가 되고 지금은 배롱나무가 되었듯이.
휘지비지(諱之秘之)란 사자성어가 배롱나무처럼 흐지부지가 되었듯이.
세화미술관이 '새와 미술관'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이것은 파이프다,라고 하면 파이프인 것이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하면 파이프가 아닌 것이다.
누군가는 배기롱나무가 아니고 백.일.홍.나.무.야!라고 소리쳤을 것이고
맞다, 아니다를 반복하다 광화문 광장을 찬성한다, 반대한다를 반복했을 것이다.
그러니 언젠가는 세화미술관이 '새와 미술관'으로 버젓이 바뀔 수도 있겠다.
그렇게 하기로 한 우리가 좀더 많아지면 그렇게 되겠지.
비가 일년 삼백육십오일 내린다고 하면 그림들은 다 비에 젖고 쇠와 구리로 만든 작품만 남으면
'쇠와 미술관'이 되는 것도 이해해주는 친구들이 많아지려나.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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