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해역 [이덕규]
여자하고 남자하고
바닷가에 나란히 앉아 있다네
하루 종일 아무 짓도 안 하고
물미역 같은
서로의 마음 안쪽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다네
너무 맑아서
바닷속 깊이를 모르는
이곳 연인들은 저렇게
가까이 있는 손을 잡는 데만
평생이 걸린다네
아니네, 함께 앉아
저렇게 수평선만 바라보아도
그 먼바다에서는
멸치떼 같은 아이들이 태어나
떼지어 떼지어 몰려다닌다네
-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문학동네, 2022
* 청정 해역에서 잡힌 전복으로
초록색 바닷물 닮은 죽을 끓여 먹고 싶네.
꼬들꼬들한 해초 듬뿍 넣고 초고추장에 밥 비벼
게눈 감추듯 비빔밥을 먹고 싶네.
커피 한 잔씩 테이크아웃해서 수평선 바라보며 하염없이 멍때리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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