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이상한 花甁 [문태준]

JOOFEM 2022. 10. 29. 11:47

 

 

 

이상한 花甁 [문태준]

 

 

 

 

  유행하던 부처는 한 나무 아래 오래 머물지 않았는데

  너는 이 세상 어디를 돌고 돌아 마음을 쉬게 할까

  나는 벌써 한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쓸쓸하게 예감한다

  둠벙 같은 그곳에서 서서히 나의 부패가 시작되리라

는 것을 예감한다

  나는 오늘 꽃이 꽂혀 있는 화병을 골똘히 보고 있다

  쳐진 그물에 물고기가 갇히듯이 화병에 갇힌 꽃은 

  죽은 물고기의 마른 비늘이 물속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

  어깨는 주저앉고 두 눈동자는 璧처럼 얼이 없다

  꽃의 얼굴은 목탄 그림처럼 어두워졌다

  화병은 하루 안에도 새 꽃을 묵은 꽃으로 만드는 재

주가 있다

  화병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내가 시드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한다

 

                - 가재미, 문학과지성사, 2006

 

 

 

 

* 생화를 화병에 꽂는 날은 특별한 날이다.

꽃다발을 받고 화병에 꽂으며 며칠이나 갈까를 걱정한다.

시든 꽃이 되면 거꾸로 매달아 물기를 말리고

여기저기 구석에 거꾸로인 채 매달아 놓는다.

아, 저것은 졸업식 꽃.

아, 저것은 결혼식 꽃.

아, 저것은 생일때 받은 꽃.

비록 시든 꽃이지만 그날의 환한 웃음을 기억하게 하는 마법이 있다.

화병은 그렇게 며칠만 쓸쓸하지 않게 자기 몫의 역할을 한다.

시든 꽃 한묶음이 화병의 친구가 되어 쓸쓸할 때마다 거꾸로 매달려 메롱거린다.

쓸쓸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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