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 커피숍 - L.J.N.에게 [강은교]
저 포도주스가 강물이라면
만약에
L.J.N.
조각배 저어 그대에게로 가리
바람은 알맞게 불고
돛폭은 지난밤 꿈처럼 부풀어
그러면 노를 잠깐 놓고 포도의 맛을 보리
L.J.N.
저 낡은 휘장이
허리가 묶여 늘어진 그대의 속눈썹이라면
만약에
L.J.N.
휘장을 걷고 그대여
잠시 그대의 눈빛 보여다오
언뜻언뜻 보이는 그대의 눈빛에 쓰다듬겨
나 다시 꿈꿔보리
L.J.N.
떨고 있는 저 흐린 유리창 밑
묵묵히 서 있는 '백조' 간판, 검은 명조체 글씨가
그대의 가슴뼈라면
만약에
L.J.N.
오늘처럼 출출히 비 내리는 날에도 그대 가슴뼈 밑에
비 맞으며 서 있으리
서
기다리기만 하리
L.J.N.
- 초록거미의 사랑, 창비, 2006
* 애인을 만나는 장소는 한때 다방이었다.
종로서적 앞에서 만나자고 해도 결국 가는 곳은 다방이었다.
라이터와 성냥을 공짜로 주는 곳이 많았다.
성냥은 다방마다 다르게 만들어 성냥곽을 모으는 취미도 있었다.
사랑하는 애인과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질 공간이 그리 많지 않아서
주로 다방에 앉아 있다가 밥 먹고 돌담길 걷다가 헤어지는 게 전부였었다.
다방에서 조금 진화한 게 커피숍이다.
아마도 시인은 커피숍, 특히 '백조 커피숍'에서 사랑하는 이와의 시간을 가졌었던 것 같다.
눈빛에 쓰다듬겨 다시 꿈꿀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요즘은 다방도 사라지고 커피숍도 사라지고 대개는 카페라고 불리운다.
아주 시골에 가면 아직도 다방이 있긴 하다.
혹은 도시에도 커피숍이 있긴 하다.
백조 커피숍이 혹시 있으려나 싶어 검색했더니 부산역 앞에도 있고, 감전역 근처에도 있다.
명조체로 유리창에 붙여진 이름, '백조 커피숍'.
연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커피숍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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