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열차 [이병률]
- 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긴 시간 동안 열차를 타야 한다
며칠 동안 열차를 타야 하는 대륙사람들은
만나고 싶은 사람이나 친척들을 아주 잠깐 동안이나마
열차가 쉬어 가는 역에서 만난다
그리고 그렇게 만나면서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나는 여러 번 목격했다
이번 어느 날,
저는 열차를 타고
당신이 사는 델 지나친다고
편지를 띄웠습니다
5시 59분에 도착했다가
6시 14분에 발차합니다
하지만 플랫폼에 나오지 않았더군요
당신을 찾느라 차창 밖으로 목을 뺀 십오분 사이
겨울이 왔고
가을은 저물 대로 저물어
지상의 바닥까지 어둑어둑했습니다
- 시작, 2002 가을호
* 지금은 그런 행사가 사라지고 없어졌지만
아주 가끔 남북의 이산가족이 만나는 행사가 있곤 하였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북으로 갈라져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가족들.
장도열차를 타고 온 플랫폼은 아니지만 한곳에 모여 울고불고 하다가
눈물 그치기도 전에 다시 헤어져야 하는 그것이 목을 뺀 십오분과 같은 것.
그렇게라도 만난 분들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만나지 못하고 이제는 팔십너머 구십너머가 되어 희망이 사라진 노인들에게는
십오분이 아니라 편지나 전화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들 장도열차 타고 갈 힘도, 희망도 없는 실향민들이 아직 많다.
그리운 사람을 목을 뺀 십오분만이라도 만날 수 있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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