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블랙리스트 [박준]

JOOFEM 2025. 5. 6. 09:56

의자는 늘 그자리를 지켰는데 내가 의자를 좋아했다, 싫어했다,했네. 노명희화가 그림

                                                                                  

 

 

 

 

블랙리스트 [박준]

 

 

 

 

  몇해 전 아버지는 자신의 장례에 절대 부르지 말아야 할

지인의 목록을 미리 적어 나에게 건넨 일이 있었다 금기형,

박상대, 박상미, 신천식, 샘말 아저씨, 이상봉, 이희창, 양상

근, 전경선, 제니네 엄마, 제니네 아빠, 채정근, 몇은 일가였

고 다른 몇은 내가 얼굴만 알거나 성함만 들어본 분이었다

"네가 언제 아버지 뜻을 다 따르고 살았니?"라는 상미 고모

말에 용기를 얻어 지난봄 있었던 아버지의 장례때 나는 모

두에게 부고를 알렸다 빈소 입구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리

며 방명록을 쓰던 이들의 이름이 대부분 그 목록에 적혀 있

었다

 

 

                       - 마중도 배우도 없이, 창비, 2025

 

 

 

 

 

 

 

 

 

* 함께 잘 지내다가 뭔가 틀어져 다시는 얼굴을 보기 싫어서 

오죽하면 목록을 만들어 부르지 말라고까지 했을까마는 

사실 미웠던 그 사람들은 빈소 입구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온 분이 아닌가.

나의 편견과는 달리 함께 잘 지냈던 분들은 나를 달리 생각하고 살았다는 얘기다.

하긴 상미 고모까지 목록에 넣은 걸 보면 뭐가 틀어져도 단단히 틀어졌었나보다.

 

지금 내 손전화 목록에는 없는 이들은 아예 부르지도 않을 것이니 미리 지워두는 게 낫겠다.

그러고도 풍문을 듣고 온다면 어쩔 수 없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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