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의 입관(入棺)[천상병]
심통(心痛)한 바람과 구름이었을 게다, 네 길잡이는
고단한 이 땅에 슬슬 와서는
한다는 일이 가슴에서는 숱한 구슬
입에서는 독한 먼지
터지게 토(吐)해 놓고,
오늘은 별일없다는 듯이
싸구려 관(棺)속에
삼베옷 걸치고
또 슬슬 들어간다.
우리가 두려웠던 것은
네 구슬이 아니라
독한 먼지였다.
좌충우돌의 미학은
너로 말미암아 비롯하고
드디어 끝난다.
구슬도 먼지도 못되는
점잖은 친구들아
이제는 당하지 않을 것이니
되려 기뻐해다오.
김관식(金冠植)의 가을바람 이는 이 입관(入棺)을
김관식[김진경]
나는 그의 얼굴을 본 적도 없고
나는 그의 시를 변변히 읽은 것도 없어
하지만 그는 엄연히
내 시의 가장 큰 스승이야
내 젊은 시절
그와 강경상고 동창이라는 큰형은
나를 만류해보려고
늘 그를 들먹거리곤 했지
보릿고개 넘는 시골에 시를 씁네 하고
하얀 양복에 백구두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미친 놈이라더군
만석꾼의 자식이었던 그는
그 많은 재산 다 털어먹고
막걸리 주전자를 원망하며 두드리다 죽었다더군
그는 그렇게 내 시의 가장 큰 스승이 됐어
말하자면 멸망의 스승인 셈이지
누구나 멸망을 싫어하는 요즘 같은 땐
가끔 그를 떠올려
시가 멸망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일 수 있는거지?
* 두 분의 시인이 본 시인 김관식, 아니 대한민국 김관식에 대한 모습이다.
천재로 태어나서 육당 최남선에게 사사받았던 지식인,
서정주의 동서이기도 한 그,
어린 나이에 최연소 논설위원이었던 그.
앞서 박용래시인의 시 한 편을 올리다 문득 김관식시인이 생각나 두 편을 올려본다.
강경상고에서 공부를 했던 분들이라 그렇다.
재미있는 것은 시단의 기인이라 하면 천상병과 김관식을 꼽는데 천상병이 김관식을 노래했다는 거다.
게다가 "우리가 두려워 했던 것은 네 구슬(시)이 아니라 독한 먼지(독설 혹은 쌍욕)였다"라거나
"점잖은 친구들아 이제는 당하지 않을 것이니 되려 기뻐해다오"라고 노래했다는 거다.
술 얻어먹기로 유명했던 천상병과 김관식.
김관식이 먼저 가지 않았다면 천상병에 대한 시가 씌어지진 않았을까?
점잖은 친구(김관식에게 삥 뜯긴 시인들)들은 김관식이 먼저 가서 이제껏 편히 시를 썼으리라.
다음에 기회가 되면 천상병이 두려워 하지 않았던 김관식의 구슬같은 시를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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