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김관식의 입관(入棺)[천상병]외

JOOFEM 2010. 10. 17. 16:15

 

 

 

 

 

 

 

김관식의 입관(入棺)[천상병]

 

 

 

 

심통(心痛)한 바람과 구름이었을 게다, 네 길잡이는

고단한 이 땅에 슬슬 와서는

한다는 일이 가슴에서는 숱한 구슬

입에서는 독한 먼지

터지게 토(吐)해 놓고,

오늘은 별일없다는 듯이

싸구려 관(棺)속에

삼베옷 걸치고

또 슬슬 들어간다.

우리가 두려웠던 것은

네 구슬이 아니라

독한 먼지였다.

좌충우돌의 미학은

너로 말미암아 비롯하고

드디어 끝난다.

구슬도 먼지도 못되는

점잖은 친구들아

이제는 당하지 않을 것이니

되려 기뻐해다오.

김관식(金冠植)의 가을바람 이는 이 입관(入棺)을

 

 

 

 

김관식[김진경]

 

 

 

 

 

나는 그의 얼굴을 본 적도 없고

나는 그의 시를 변변히 읽은 것도 없어

하지만 그는 엄연히

내 시의 가장 큰  스승이야

내 젊은 시절

그와 강경상고 동창이라는 큰형은

나를 만류해보려고

늘 그를 들먹거리곤 했지

보릿고개 넘는 시골에 시를 씁네 하고

하얀 양복에 백구두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미친 놈이라더군

만석꾼의 자식이었던 그는

그 많은 재산 다 털어먹고

막걸리 주전자를 원망하며 두드리다 죽었다더군

그는 그렇게 내 시의 가장 큰 스승이 됐어

말하자면 멸망의 스승인 셈이지

누구나 멸망을 싫어하는 요즘 같은 땐

가끔 그를 떠올려

시가 멸망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일 수 있는거지?

 

 

 

 

 

 

 

 

 

 

* 두 분의 시인이 본 시인 김관식, 아니 대한민국 김관식에 대한 모습이다.

천재로 태어나서 육당 최남선에게 사사받았던 지식인,

서정주의 동서이기도 한 그,

어린 나이에 최연소 논설위원이었던 그.

앞서 박용래시인의 시 한 편을 올리다 문득 김관식시인이 생각나 두 편을 올려본다.

강경상고에서 공부를 했던 분들이라 그렇다.

재미있는 것은 시단의 기인이라 하면 천상병과 김관식을 꼽는데 천상병이 김관식을 노래했다는 거다.

게다가  "우리가 두려워 했던 것은 네 구슬(시)이 아니라 독한 먼지(독설 혹은 쌍욕)였다"라거나

"점잖은 친구들아 이제는 당하지 않을 것이니 되려 기뻐해다오"라고 노래했다는 거다.

술 얻어먹기로 유명했던 천상병과 김관식.

김관식이 먼저 가지 않았다면 천상병에 대한 시가 씌어지진 않았을까?

점잖은 친구(김관식에게 삥 뜯긴 시인들)들은 김관식이 먼저 가서 이제껏 편히 시를 썼으리라.

다음에 기회가 되면 천상병이 두려워 하지 않았던 김관식의 구슬같은 시를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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