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정겸]
세컨드
때로는 요상한 여자들을 비교하며 폄훼시킨다.
사실 나는 첫 번째는 물론 두 번째조차 해본 적 없다.
TV를 본다.
KBS 개그콘서트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코너에서 한 개그맨이“첫째와 1등만 대우받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거침없이 외쳐댄다.
채널은 다시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중계방송으로 돌려지고
원형의 빙판을 따라 1등의 자리를 놓고 선두 각축이 치열하다.
순간
아이들 방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안방과 건넌방을 사이 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내전
첫째아이가 쇳소리를 내며 소리 지른다.
“야, 네가 입고 있는 내 옷 전부 내놔.”
둘째아이도 이에 질세라 모두 벗어준다며 제 방으로 문 쾅, 닫고 들어간다.
잠시 적막이 흐르고 한참을 지나도 인기척 없다.
방정맞은 생각에 살그머니 둘째를 들여다본다.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다.
언니 옷 벗어 놓고 보니
정작 자기 것은 속옷이 전부란다.
아뿔싸, 그러고 보니
둘째에게 제대로 된 옷 한 벌 사준 적 없다.
* 수필가 박문하선생님의 수필에 보면 딸 세자매의 이야기가 나온다.
둘째는 어느날 스트레스가 폭발해 이렇게 외친다.
- 나, 이다음에 딸셋을 낳아 둘째만 빼고 둘다 실컷 부려먹을테야!
언니는 언니라서, 막내는 막내라서 대개 둘째에게 심부름을 시키게 된다.
나도 둘째 아들로 태어나 둘째로서의 한(?)은 있다.
그래도 밑에 동생이 어릴 때 죽어서 막내처럼 대우받을 때도 있었다.
우리집 삼남매는 딸,아들,딸이어서 둘째는 별로 스트레스가 없다.
어차피 힘센 남자가 해야한다는 사명감 탓에 혼자 십자가를 지기때문이다.
큰애와 막내는 여섯살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덩치가 달라 옷을 물려입지 않는다.
오히려 가끔 막내옷을 큰애가 몰래 입고 나가는 편이다.
둘째의 서러움은 둘째만이 안다.
그 서러움 평생 간다.
그러니 커서는 싸우지 말아야 한다. 싸우다보면 옛날의 서러움 다 나온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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