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꽃잠[이재무]

JOOFEM 2011. 4. 14. 23:04

 

 

 

 

 

꽃잠[이재무]

 

 

 

 

꽃 피운 목련나무 그늘에 앉아

누군가 부쳐온 시집 펼쳐놓는다

아니, 시는 건성으로 읽고

행간과 행간 사이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햇살은 낱알로 내려 뜰 가득 고봉으로

소복 쌓이고 시집 속 봄볕에

나른해진 글자들

겯고 튼 몸 뒤틀다가 하나, 둘, 셋

느슨하게 깍지를 풀고

꼬물꼬물, 자음과 모음 벌레 되어 기어나온다

줄기와 가지 따라 오르고

꽃 치마 속 파고들기도 한다

간지러운 듯 나무가 웃고

꽃은 벙글벙글

이마에 책 쓰고 누워

배 맛처럼 달고 옅은 꽃잠을 잔다

 

 

 

 

 

 

 

 

* 하, 요즘 목련이 한창이다.

너무 눈이 부셔 눈 둘 곳이 없다.

봄이라고 몸도 나른한 오후가 있어서

아무리 달래며 냉이며 씀바귀로 입맛을 돋구어도

참을 수가 없는 지경이다.

 

다행인 것은 밤 열두시부터 아침 여섯시까지는 세상없어도 잠을 잘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지.

머리만 땅에 대면 잠이 드는지라 꽃잠인지 꿀잠인지 보약잠인지 알 바가 아니다.

배 맛조차 느끼지 못하고 그저 잠드는 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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