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잠[이재무]
꽃 피운 목련나무 그늘에 앉아
누군가 부쳐온 시집 펼쳐놓는다
아니, 시는 건성으로 읽고
행간과 행간 사이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햇살은 낱알로 내려 뜰 가득 고봉으로
소복 쌓이고 시집 속 봄볕에
나른해진 글자들
겯고 튼 몸 뒤틀다가 하나, 둘, 셋
느슨하게 깍지를 풀고
꼬물꼬물, 자음과 모음 벌레 되어 기어나온다
줄기와 가지 따라 오르고
꽃 치마 속 파고들기도 한다
간지러운 듯 나무가 웃고
꽃은 벙글벙글
이마에 책 쓰고 누워
배 맛처럼 달고 옅은 꽃잠을 잔다
* 하, 요즘 목련이 한창이다.
너무 눈이 부셔 눈 둘 곳이 없다.
봄이라고 몸도 나른한 오후가 있어서
아무리 달래며 냉이며 씀바귀로 입맛을 돋구어도
참을 수가 없는 지경이다.
다행인 것은 밤 열두시부터 아침 여섯시까지는 세상없어도 잠을 잘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지.
머리만 땅에 대면 잠이 드는지라 꽃잠인지 꿀잠인지 보약잠인지 알 바가 아니다.
배 맛조차 느끼지 못하고 그저 잠드는 봄밤이다.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식사법[김경미] (0) | 2011.04.17 |
---|---|
고무줄놀이[한미영] (0) | 2011.04.15 |
둘째[정겸] (0) | 2011.04.05 |
효자가 될라 카머 ㅡ김선굉 시인의 말 [이종문] (0) | 2011.04.02 |
뒷짐[문인수] (0) | 2011.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