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아욱국 [김윤이]
방고래 딛고 어머니가 들여온 밥상
아욱국이 입안에서 달금하다
날마다 재봉틀 앞 허리 굽혀 앉은뱅이하다
가끔씩 일어나 가꾼 것들이다
동네 아낙들의 시샘에도 오가리가 들지 않고
푸릇하니 살이 올랐다
빈 북실에 실을 감듯, 두엄으로 길러낸 아욱 잎엔
잎맥들이 팽팽하다
재봉틀 아래에서 올려진 밑실, 윗실과 합쳐져
손바닥 같은 잎사귀마다 촘촘히 박혀있다
날이 여물수록 어떤 마음이 엽맥에 배인 것일까
누런 된장과 끓어올라 게게 풀어져
맛깔난 향이 가득하다
애야, 가을 아욱국은 사위 올까봐 문 걸고 먹는 거란다,
딸내미가 아귀차게 먹는 양을 보고 웃으신다
오랜만에 고봉밥을 비우며 바라보는 어머니 머리 위
올 굵은 실밥 길게 묻어있다
어머니가 다듬은 아욱국은
뜨겁게 내게 넘어오는데
숟가락 든 손끝은 바늘에 박힌 것처럼 아득하다
딴청 피듯 묻은 실밥을 떼어내고
얼결에 집어든 열무김치를 무뚝 베어 문다
매옴하게 번져오는 가을이 깊다
* 국은 역시 아욱국이 좋다.
초록색이 배어나오면 마치 올갱이국처럼 뽀오얀게 간이 금세 건강해질 것 같다.
아욱은 마트에서는 잘 안파는 것이어서 그 대용으로 근대를 잘 산다.
근대국은 뽀오얀 국물이 나오지 않으므로 짝퉁이긴 해도 그런대로 먹을만 하다.
(근대가 이 말을 들으면 엄청 서운하겠다.)
가을에는 역시 아욱국이 좋다.
오늘 저녁에는 고봉밥 좀 비워보게 아욱국을 끓여야겠다.
엽맥, 잎맥이 없으면 인맥으로라도 아욱국을 먹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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