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세상의 등뼈 [정끝별]

JOOFEM 2012. 1. 1. 23:30

 

 

 

 

 

세상의 등뼈 [정끝별]

 

 

 

 

누군가는 내게 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입술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어깨를 대주고

 

대준다는 것, 그것은

무작정 내 전부를 들이밀며

무주공산 떨고 있는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져

더 높은 곳으로 너를 올려준다는 것

혈혈단신 땅에 묻힌 너의 뿌리 끝을 일깨우며

배를 대고 내려앉아 너를 기다려준다는 것

 

논에 물을 대주듯

상처에 눈물을 대주듯

끝모를 바닥에 밑을 대주듯

한생을 뿌리고 거두어

벌린 입에

거룩한 밥이 되어준다는 것, 그것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 신정이든, 구정이든 부모를 찾아 인사를 드리고

세배함으로 세상의 등뼈를 확인한다.

오늘 유일하게 남으신 어른에게 세배를 다녀왔다.

세뱃돈으로 삼십만원을 받았다.

돌아가실 때까지 늘 나는 자식으로서 세뱃돈을 받을 것이다.

품과 돈과 밥과 사랑을 대주시는 어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하다.

받은 세뱃돈은 가난한 식구에게 찔러주었다.

그 역시 내가 대주고 사랑하는 까닭이다.

밥이라고 다 같은 밥이 아니고 구별되는, 거룩한 밥이니 이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랴.

떡국 한 그릇에서 거룩한 밥이 되어주신 그 큰 사랑을 나는 오늘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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