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일-박수근의 그림에서 [장석남]
인쇄한 박수근 화백 그림을 하나 사다가 걸어놓고는 물끄
러미 그걸 치어다보면서 나는 그 그림의 제목을 여러 가지로
바꾸어보곤 하는데 원래 제목인 '강변'도 좋지만은 '할머니'
라든가 '손주'라는 제목을 붙여보아도 가슴이 알알한 것이
여간 좋은 게 아닙니다. 그러다가는 나도 모르게 한 가지 장
면이 떠오릅니다. 그가 술을 드시러 저녁 무렵 외출할 때에는
마당에 널린 빨래를 걷어다 개어놓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 빨
래를 개는 손이 참 커다랬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장엄하기까
지 한 것이어서 聖者의 그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는 멋
쟁이이긴 멋쟁이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또한 참으로 궁금한 것은 그 커다란 손등 위에서
같이 꼼지락거렸을 햇빛들이며는 그가 죽은 후에 그를 쫓아
갔는가 아니면 이승에 아직 남아서 어느 그러한, 장엄한 손길
위에 다시 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가 마른 빨래를 개며
들었을지 모르는 뻐꾹새 소리 같은 것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
까. 내가 궁금한 일들은 그러한 궁금한 일들입니다. 그가 가
지고 갔을 가난이며 그리움 같은 것은 다 무엇이 되어 오는
지…… 저녁이 되어 오는지…… 가을이 되어 오는지……궁
금한 일들은 다 슬픈 일들입니다.
* 박수근화백의 사진 혹은 그림들을 보면 아이들을 업고 있는 모습이 많다.
박수근화백이 난닝구바람에 아이를 업고 있는 사진도 있다.
아마도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것 같다.
그 가난한 시절에 사랑이라도 없었다면 견딜 수 없는 생이었을텐데
빨래를 개면서 성자의 마음처럼 정갈하게 살아낸 박화백이 정말 멋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그 아들, 딸들이 가슴으로 느꼈을 아버지의 등짝이
어디에서 따뜻함으로 남아있을지 그것도 참, 궁금하다.
궁금한 게 많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살아있다는 게 감사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 이 시는 전에도 한번 올렸지만 워낙에 박수근화백을 좋아하는 까닭에
장석남의 '젖은 눈'을 펼치다가 마음이 동해 다시 올리게 되었다.
살아있다는 게 감사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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